[인문사회]무덤돌에 새겨진 역사… 과거는 살아있다

  • 입력 2009년 5월 16일 02시 54분


중국 산시 성에서 출토된 한나라 시대의 화상석 탁본. 제후가 주관하는 대규모 사냥 장면이 표현돼 있다. 사진 제공 소와당
중국 산시 성에서 출토된 한나라 시대의 화상석 탁본. 제후가 주관하는 대규모 사냥 장면이 표현돼 있다. 사진 제공 소와당
◇ 화상석 속의 신화와 역사/전호태 지음/368쪽·2만2000원·소와당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이 남긴 회화, 고구려 고분벽화 등의 문화유산은 사진을 발명하기 이전 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중국 한(기원전 202년∼기원후 220년), 특히 후한 시대에 유행한 화상석((화,획)像石)과 화상전((화,획)像塼·벽돌)도 마찬가지다. 화상석과 화상전은 돌이나 벽돌에 그림을 새겨 사당과 무덤의 부재(건축물의 뼈대를 이루는 재료)로 사용한 것이다.

울산대 교수로 고구려 고분벽화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저자는 화상석과 화상전이 “한대 사람들의 의식주, 생활, 의식 관념의 면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캔버스였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일상에 쓰였던 소소한 가구, 저택, 전쟁 무기, 화장 용기, 음식을 장만해 연회를 즐기는 모습, 각종 놀이와 운동 장면, 가축과 야생 동물, 논밭,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 상상 속의 생명체 등 시대를 읽어낼 수 있는 온갖 정보가 사진처럼 담겼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널리 전승되는 설화다. 북한의 남포특급시 강서구역 덕흥동에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견우와 직녀, 은하수를 표현한 그림이 발견됐다. 중국 화상석에도 견우와 직녀 설화가 담긴 장면이 있다. 가운데에는 벽이 있고 좌우에 있는 용과 호랑이가 다투는 모습이다. 견우는 직녀에게 달려간다. 저자는 “벽은 음양의 일체를 나타내고 용과 호랑이는 청룡과 백호로 각각 양과 음을 나타내는 존재다. 견우와 직녀의 만남은 양과 음의 결합을 뜻한다”고 말한다.

1년 만에 만나는 견우와 직녀의 들뜬 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직녀는 베틀의 일부로 추정되는 물건을 들고 견우에게 어서 오라고 재촉한다. 견우는 따라오는 소를 재촉한다. 석관 장식으로 쓰인 이 화상석은 당대인들에게 견우와 직녀 설화가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 보여준다.

또 다른 한대의 화상전에는 사냥의 역동적인 풍경이 담겼다. 청둥오리와 철새들이 무리지어 하늘을 날고 아래에는 큰 못이 있다. 못 속에는 물고기가 헤엄친다. 사냥꾼 두 사람이 한껏 활시위를 당긴다. 그런데 저자의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화살 뒤쪽으로 실이 흘러내리고 땅 위의 실패로 연결된 것. 화살에 새가 맞으면 사냥꾼은 실을 잡아 당겨 멀리 떨어진 새를 끌어오는 장치다. 이 화상전으로 한대의 사냥 방식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셈이다.

다른 화상석들에서는 당시 제후가 주관하고 참가하는 대규모 사냥이 열린 사실도 알 수 있다. 많은 백성들이 몰이꾼으로 동원됐고 산과 들을 수십 일 동안 뒤덮으며 짐승을 내몰고 창으로 찌르고 활로 쐈다.

당시 일상의 모습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한 화상전에 표현된 부엌이다. 저자는 벽돌에 새긴 그림에서 음식이 다 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정을 재치 있게 해석해낸다. 기와지붕이 있는 부엌에 부뚜막의 가마에 놓인 솥과 시루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조리하는 남자가 한 손으로 시루 뚜껑의 꼭지를 쥐고 다른 손으로 시루의 아가리를 잡은 것은 무엇인가 급하기 때문이다. 왼쪽에는 음식을 기다리는 두 남자가 있다. “한 남자는 무릎을 세우고 몸은 앞으로 굽혔다. 다른 한 사람은 비교적 점잔을 빼며 바른 자세로 앉아 있지만 눈길을 부뚜막에 주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이제나저제나’인 것이다.”

고대의 시끌벅적한 시장 모습도 볼 수 있다. 어떤 화상석을 보면 이미 한나라 때 시장 안에 구획된 공간이 있고 규칙적으로 상가들이 열을 지어 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시장의 풍경이 무척 자세하게 표현돼 있다. 주점 안의 사람이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그릇 같은 것을 건넨다. 저자는 “그 옆에 있는 평상 위에는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아 손에 쥔 막대를 흔들면서 상 앞에 선 사람과 흥정을 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화상석((화,획)像石):

중국 한나라, 특히 후한 시대에 유행한 것으로 사당이나 무덤에 쓰이는 돌에 그림을 새겨 넣은 것이다. 채색된 것도 있다. 벽돌에 새긴 것은 화상전((화,획)像塼)이라 부른다. 표현 대상이 다채로워 당시의 풍속과 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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