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불어 닥친 밤,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복 남매. 복권이 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뒤져보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다이어리다. 하지만 다이어리는 아버지의 관 안에 매장돼 있다. 삽과 공구를 챙겨든 남매는 빗길을 헤치며 아버지의 묘로 달려간다.(‘캠핑카를 타고 울란바토르까지’)
소설가 박성원 씨의 네 번째 신작 소설집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에 수록된 작품들은 다음에 전개될 내용을 섣불리 짐작할 수 없다. 유목민의 삶을 지향하면서 언제나 몽골이나 사막으로 떠나고 싶어 했던 아버지. 하지만 현실에선 싸구려 관광지에서 ‘울란바토르’란 카페를 운영하고 3만 권의 책에 둘러싸여 사는 것에 만족해야 했던 그의 죽음 뒤에 뜻밖에 로또 당첨금 43억 원이 굴러들어온다. 매 순간 예상을 배반하는 전개와 산뜻하고 가벼운 문장 속에 담긴 사유와 철학은 이야기에 흡인력과 몰입도를 높인다.
“‘시간 안에서 살다가 제 발로 걸어 나간 사람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니?’ ‘그거야. 미친놈이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만들어진 시간 안에서 길들지 못하고 뛰쳐나간 사람은 미친놈이 아니야. 그게 바로 유목민이지.’”
이런 특징들은 소설집에 수록된 다른 단편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된다. ‘논리에 대하여-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 7’은 불륜녀의 집에 몰래 들어간 남자가 갑자기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청한 낯선 여인 때문에 엉뚱한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물에 흠뻑 젖은 여자에게 수건을 주고 욕실을 쓸 수 있게 해준 게 다였지만, 여자의 애인이 나타나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하면서 곤란한 상황에 몰리게 된다.
‘몰서’는 젊은 비평가에게 ‘비약과 쓸데없는 연상만 가득 찬 그림’이라는 혹평을 받은 뒤 위상이 추락하기 시작해 급기야 창작열마저도 소진돼 버린 한 화가에 관한 이야기. 도시의 화려한 호텔에서 자살하면서 최후를 맞기로 결심한 그는 호텔에서 만난 매혹적인 여자로 인해 새로운 그림을 떠올리게 된다. 새로운 창작 모티프를 발견해내고 희열에 사로잡힌 순간, 화가는 예기치 않게 여자의 죽음과 맞닥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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