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의 마법사’ ‘노스탤지어의 전령’ ‘스토리텔링의 마술사’….
일본의 인기 작가 온다 리쿠 씨(45)에게는 별칭이 많다. 소설 ‘밤의 피크닉’ ‘삼월은 붉은 구렁을’ 등 공상과학에서 청춘소설까지 각종 장르를 넘나드는 독특한 글쓰기로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폭넓은 팬 층을 확보하고 있다.
서울 국제도서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17일 오전 9시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가 한국을 개인적 방문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방한에 맞춰 ‘어제의 세계’ ‘한낮의 달을 쫓다’ 등의 작품들이 출간됐다.
―온다 씨의 소설을 말할 때 많은 이들이 ‘이야기의 힘’을 언급한다. 작품의 흡인력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궁금하다.
“나는 작가인 동시에 내가 쓴 작품의 첫 번째 독자다.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이야기는 소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우선 나 자신이 읽고 싶을 만한 소설, 잘 읽히면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노력한다.”
―작품 세계를 한마디로 정리하기 쉽지 않다. 판타지, 미스터리, 공상과학, 호러 등 다양한 장르를 혼합한 글쓰기를 한다. 본인의 작품 세계를 직접 정의한다면….
“특별히 장르를 정해놓고 글을 쓰지는 않는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었다. 문학뿐 아니라 만화, 기담, 일상 잡화와 관련된 것들도 두루 섭렵했다. 각 분야의 책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요소를 작품에 넣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르가 섞였다. 개인적으로는 미스터리를 가장 좋아한다. 수수께끼가 있다는 점과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게 좋다.”
―범죄사건의 범인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는 본격 추리물과는 결이 다른 작품들을 쓴다. 최신작 ‘어제의 세계’만 해도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을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을 통해 재구성해낸다. 결말 역시 통상적인 예측을 벗어난다.
작가는 자기 작품의 첫 독자
내가 만족할 이야기 발굴 노력
여러세대 다룬 대하소설 쓸 것
“나는 일인칭 시점으로 글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다. 시점이 한 사람에게 한정되면 묘사의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고 사건의 다양한 맥락을 이해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어제의 세계’는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공동체에 소속된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과 시선을 보여주고 싶었다. 결말이 명쾌한 쪽보다 열린 결말에 관심이 간다. 독자들이 직접 상상력을 개입해 소설을 완성했으면 한다.”
―단편을 쓴 뒤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장편소설을 풀어내거나 장편소설의 일부를 새로운 장편으로 확대하는 ‘스핀 오프’(이전에 나온 책의 등장인물이나 상황에 기초하는 소설) 작품들이 많다. 이런 창작기법을 쓰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내 경우 단편은 잠정적으로 다음에 쓸 장편의 예고편 격일 때가 많다. 좋은 모티브가 떠올랐는데 장편을 쓸 만한 시기가 아니거나 적절한 구성이 떠오르지 않을 때 시간을 두고 장편으로 구체화한다. 스핀 오프는 미리 계획하거나 의도해서 쓰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든 그 작품만으로도 완결성을 가질 수 있게 쓰려고 한다.”
―한국 문학작품을 접한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 작가들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지만 그 대신 김기덕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김 감독 영화가 주는 충격은 관람 후 마음을 깨끗이 해주는 정화작용을 가진 것 같아 좋다. 박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도 인상적으로 봤다. ‘박쥐’가 아직 일본에서 개봉하지 않았지만 흡혈귀가 등장한다니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과 한국 팬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나는 아직 소설의 기술적인 면에 대해 수행중이다. 작가라면 좀 더 다채롭고 재밌는 책을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몇 세대에 걸친 이야기를 다루는 대하소설을 꼭 써보고 싶다. 나를 비롯한 다른 일본 작가들의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