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에서 열리는 진사(進士)고시에 부산 동래 학생들이 참여함을 아뢰옵니다.”
18일 오전 6시 부산 동래구 명륜동 동래향교 대성전 앞. 연푸른 도포에 괴나리봇짐, 흰 고무신에 갓을 쓴 남장 여고생 37명이 한양(서울)으로 떠나기에 앞서 성현(공자)에게 절을 올렸다. 유림(儒林)의 전통복장을 한 박동현 집례관(62)의 사회로 교장 격인 동래향교 송윤복 전교(78)가 고유례(告由禮)를 주제했다. ‘장원급제를 위한 과거시험장 현장체험’이란 이 행사는 동래구와 동래향교평생교육원이 공동으로 학생들의 공부 의지를 다지고 옛 선비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 위해 마련한 것.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길에 오른 학생은 대명여고, 부산중앙여고, 사직여고, 학산여고, 혜화여고 등 동래구 관내 5개 여고 1년생 37명이다. 조선시대 같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여자의 신분이지만 성균관에서 흔쾌히 승낙하는 바람에 처음으로 현대판 여성 과거체험행사가 성사됐다. 걷거나 말을 타는 대신 관광버스로 이날 오후 1시 성균관에 도착한 이들은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少年易老學難成), 잠시라도 시간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一寸光陰不可輕)…’는 ‘권학문(勸學文)’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이어 치러진 미니 과거시험의 시제는 ‘성균관’ 3행시 짓기였다.
‘성균관에서 과거 보니 내 마음이 새롭구나. 균일한 마음으로 과거 보니 내 마음이 성스럽구나. 관직에 나아가도 이 마음 변치 않길…’이란 글을 써낸 학산여고 김경련 양이 장원을 차지했다. 차하를 한 혜화여고 박선영 양은 “역사 선생님이 꿈인데 선조들은 어떻게 배우고 공부했는지, 미래 설계를 위해 견문을 넓혀보고 싶어 참여했다”고 말했다.
과거시험 뒤에는 동래 출신 서울대 재학생과 함께 서울대 규장각과 도서관, 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캠퍼스 투어도 실시했다. 서울대 교내에서는 견학생인 이들을 구경하려고 재학생이 몰려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찬기 동래구청장은 “선조들이 걸었던 길을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 이상의 생생한 교육이 어디에 있겠느냐”며 “청소년들의 이상과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책무는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