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그건 너무 쉬워."
석범은 노윤상을 먼저 체포하자는 앨리스의 주장을 단칼에 잘랐다. 억울한 듯 앨리스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노원장이라면 충분히 뇌를 꺼내 옮길 기술을 가졌습니다."
"시정희, 변주민, 방문종! 셋 다 노원장 환자야. 남형사! 셋을 차례차례 죽이면 누가 용의선상에 놓일지는 삼척동자도 알아. 노원장이 그런 멍청한 짓을 했을 것 같은가? 남형사가 노원장이라면 자기 환자 셋을 순서대로 죽인 뒤 아무렇지도 않게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겠어? 노원장은 아냐."
"그, 그렇겠군요. 하지만 그 셋을 엮어주는 연결고리가 지금으로선 노윤상 원장뿐이지 않습니까? 셋이 같은 동네에 사는 것도 아니고, 같은 취미를 가졌다거나 같은 종교를 믿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속단하긴 일러. 답답한 건 알지만, 성급하게 노원장을 잡아들였다가 아무것도 캐내지 못하면 그땐 어떡할 거야? 어차피 노원장은 우리 손바닥 안에 있어. 보안청에서 의뢰하는 이들을 진찰까지 하고 있으니, 신중하게 접근해도 충분해. 내가 명령하기 전엔 절대로 먼저 움직이지 마. 알겠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문이 열리고 미미가 나왔다. 석범과 앨리수가 좌우에서 다가섰다. 미미는 상기된 얼굴로 웃어보였다. 무엇인가를 찾은 것이다.
"두 사람이 더 있더군요."
"두 사람이…… 더 있다?"
앨리스가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2049년 2월 27일 그룹 상담치료 영상을 찾았습니다. 시정희, 변주민, 방문종 환자 외에 한 사람이 더 상담치료를 받았더군요."
"누굽니까?"
"100퍼센트 인간, 남자, 32세, 이름은 최볼테르, 직업은 로봇공학 전공 교수입니다."
"최볼테르라고 했습니까?"
앨리스가 소리쳤다.
"네. 아시는 분인가 보죠?"
앨리스가 고개를 돌려 석범을 쳐다보았다. 놀라기는 석범도 마찬가지였다. 영상 하나가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무사시와의 시범 경기에서 참패한 후 볼테르가 의자를 집어던지며 난동을 피우던 장면이었다. 그때 볼테르의 팔에 얼굴을 맞은 노민선이 퉁퉁 부은 턱과 볼을 가린 채 카페 UFO에 맞선을 보러 나왔었다. 다혈질인 건 알았지만, 앵거 클리닉을 다니고 있었단 말인가?
"헌데 아까 두 사람이 더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룹 상담치료를 모두 네 명이 받았다면, 시정희, 방문종, 변주민, 최볼테르, 이렇게 넷일 텐데, 나머지 한 사람은 뭡니까?"
석범의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미미가 생글생글 웃으며 답했다.
"한 분이 원래 오시기로 했는데 불참하셨더라고요. 100퍼센트 인간, 남자, 50세, 이름은 박말동, 자영업자로 <꽃보다>란 꽃집을 운영합니다."
"꽃보다!"
석범과 앨리스는 동시에 가게 이름을 외쳤다.
"네. 그 전에도 꾸준히 상담치료를 받으셨어요. 밝게 웃으시고 느릿느릿 급한 게 없는 분이시죠. 왜 가게 이름이 <꽃보다>냐고 물었던 적이 있답니다. 꽃을 보다의 꽃보다도 되고 꽃보다 멋진 남자가 주인이라는 뜻도 된다더군요. 정말 유머가 넘치는 분이셨어요."
"가지!"
석범과 앨리스가 황급히 앵거 클리닉을 벗어났다. 헉헉거리며 자동차에 오르자마자, 앨리스는 대뇌수사팀에서 대기 중인 성창수를 홀로그램으로 불러냈다.
"성 선배! 남자, 50세, 박말동과 특별시 경계 밖에서 발견된 신원미상 남자의 특징을 비교해주십시오. 급합니다."
그리고 석범과 앨리스를 태운 자동차는 SAIST 차세대로봇연구소로 향했다. '꽃뇌'가 박말동이라면, 볼테르는 끔찍한 연쇄살인마이거나 혹은 다음 살해 대상자일 가능성이 컸다. 어느 쪽이든 최 교수를 만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앨리스는 '긴급상황'임을 보안청에 알리고 규정 속도를 넘겨 질주했다. 석범은 휙휙 달려왔다 밀려 사라지는 창밖을 노려보며 혼잣말을 해댔다.
"……그래도 여전히 모르겠어. 살인 동기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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