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 탄 배우가 미니핸들로 몰래 운전
―뮤지컬 ‘삼총사’에서 배우들이 돛단배를 타고 무대 위를 가로지르는 장면을 봤습니다.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합니다. (김남중·34·서울 도봉구 창동)
‘삼총사’(충무아트홀·6월 21일까지)를 보게 되면 돛단배 위에 쓰러져 있는 철가면을 쓴 왕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이 배우가 범퍼카용 미니핸들로 돛단배를 몰고 있으니까요.
서숙진 무대감독에 따르면 2, 3명이 탈 수 있는 작은 배는 전동 휠체어를 개조해서 만들고 5, 6명이 타는 중형 배는 골프장 차를 개조한다고 합니다. ‘삼총사’ 속 돛단배는 자체 제작으로 만들었지만 골프장의 전동차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제작비는 1500만 원가량, 소형 차 한 대 값이죠. 공연에서는 모터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별도로 제작된 방음 박스 덕분입니다. 돛단배가 얼마나 그럴 듯하게 움직이느냐는 조종하는 배우의 ‘운전 실력’에 달려 있습니다. ‘삼총사’의 경우 배가 가끔 출렁거리는데 이는 조종하는 배우가 운전하다 멈추는 과정을 반복해 그런 효과를 내기 때문입니다.
발레 ‘라바야데르’의 움직이는 200kg 코끼리,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의 엘리베이터 문, 연극 ‘아일랜드’에서 반으로 포개지는 원형 감옥…. 이처럼 무대 위에는 배우만큼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품이 많습니다.
‘라바야데르’에 나오는 코끼리는 몸통 안에 6명의 스태프가 들어가 움직이고 ‘아일랜드’에서 원형 감옥이 포개지는 건 검은 옷을 입은 제작진의 숨은 노력이죠. 뮤지컬 ‘싱글즈’의 대형 하이힐도 자동처럼 보이지만 수동으로 움직입니다. 주인공 나난의 방에는 하이힐 모양의 침대가 소품으로 30분가량 등장합니다. 210cm 높이의 비좁은 굽 안에 제작진 한 명이 들어가 구두 몸통을 밀면서 진땀을 흘려야 합니다.
제작진이 수동을 선호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일단 자동에 비해 제작비가 저렴합니다. 악어컴퍼니 최보규 제작이사는 “소극장의 경우 자동화하려면 레일부터 깔아야 한다”며 “자동은 수동보다 2배가량 제작비가 더 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자동으로 할 경우 통제가 어렵습니다. 기계의 오작동으로 공연을 망치는 최악의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자동으로 움직이다 수동으로 바꿀 수 있는 ‘반자동’ 시스템을 선호합니다.
언제 고장 날지 모르는 기계보다 사람이 더 미덥다지만 그래도 실수는 있게 마련이죠. ‘싱글즈’ 대구공연에서는 굽 안에 들어가 있던 스태프의 두 발이 공연 내내 검은 천 밖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뮤지컬 ‘대장금’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쪽배가 조명을 비추지 않는 엉뚱한 곳으로 흘러간 적도 있습니다. 운전에 서툰 배우 탓이었죠.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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