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템포의 전자 댄스 음악이 전시장에 흥겹게 울려 퍼진다. 처음 듣는데도 어딘지 친숙한 느낌. 영상 스크린에는 의미가 통하지 않는 글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7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02-733-8945)에서 열리는 오인환 씨(45)의 ‘TRAnS’전에 선보인 설치작업 ‘진짜 사나이’다. 유명한 군가의 악보를 뒤집어 연주하고, 가사는 가나다순으로 재배열해 우리 사회의 굳건한 남성주의를 유희적으로 전복시킨 작품이다.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 문제를 개인이 아닌, 사회 문화적 이슈를 다루는 토대로 삼아 왔다. 이번 전시도 비디오, 사운드, 텍스트 작업으로 ‘차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맨얼굴을 드러낸다.
작업은 개념적이나 소통에 대한 열망이 녹아 있어 지루하거나 차갑지 않다. 친구와 작가의 집에서 똑같은 물건을 찾아내 사진 찍은 ‘우정의 물건’은 물건을 통해 사람들의 공통점을 드러내고, 흔한 이름 중에서 작가가 선택한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는 차량이 전시기간 중 서울을 누비는 ‘이름 프로젝트: 당신을 찾습니다’는 관객을 찾아 움직이는 미술작품을 시도한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진행된 프로젝트 ‘유실물 보관소’는 물건을 맡긴 사람과 찾아간 사람을 사진으로 조우하게 한다.
이 사회가 ‘다수의 방식’ 혹은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딴죽을 거는 작가. 정체성을 화두로 삼은 그의 작업은 다양성의 공존을 강조하며 열린 마음으로 우리를 이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