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야기]누드작가, 인체의 신비 찾다 세상에 눈뜨다

  • 입력 2009년 5월 22일 02시 56분


■ 누드사진 왜 찍는 걸까

누드 하면 떠올리는 야한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누드란 소리만 들어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곤 한다. 회화와 달리 누드사진은 사실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진매체 특성상 선정성 문제가 그림자처럼 따른다. 사진작업을 하는 작가도 이를 늘 의식하며 작업에 임할 수밖에 없다. 애초 누드사진은 예술이 아니라 도색사진으로 미리 출발했기에 오늘날까지도 선악의 양면을 지닌다. 따라서 세상에는 두 부류가 공존한다. 누드사진을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작가와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돈버는 데 몰두하는 장사꾼. 조지 레빈스키가 쓴 ‘누드사진의 역사’에 따르면 1851년 사진 습판법이 발명된 이듬해 누드사진이 처음 나타났다. 국내에 누드사진이 들어온 시기는 약 50년 뒤인 1900년경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은밀히 사진을 찍은 탓에 남아있는 사진은 그로부터도 30년 뒤 것이다.

국내 최초 나체사진은 1920년대 일본인들이 일본 여인의 전신사진을 찍어 채색한 뒤 춘화 개념으로 통신판매를 했던 사진으로 전해진다. 1930년대 동아일보 사진기자였던 강대석이 찍은 여인의 전신사진이 현존하는 국내 최초의 누드사진이다.

국내 사진가가 촬영한 누드사진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광복 이후. 1956년 5월 월간 ‘사진문화’ 창간호에 이건모, 이경중이란 작가의 이름으로 얼굴 없는 누드사진이 등장했다. 누드란 용어도 이때 처음 사용했다.

○ 작가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누드

이후 여러 사진가들이 누드사진을 촬영했지만 보수적 사회 분위기 때문에 구할 수 있는 모델은 유흥업소 종업원이 대부분이었다. 또 누드사진에 대한 일반의 부정적 인식을 무릅쓰고 사진을 찍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고, 촬영과정도 고난의 연속이어서 웃지 못할 일화들도 많았다.

사진작가 고 정도선 씨의 경우 주로 다방에서 모델 섭외를 했다. 설득 끝에 얼굴은 안 보이게 하는 조건으로 사진을 찍었지만 나중에 이를 안 모델의 남자친구에게 호되게 봉변당할 위기를 맞았다. 46년간 누드를 찍은 정운봉 씨(86)는 아내가 목욕탕에서 몸매가 되는 여인을 발견하면 직접 섭외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1983년에서야 펴낸 누드집 ‘나와 景’은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식인가를 받은 국내 1호 누드사진집이 됐다. 또 다른 원로작가는 젊은 시절 결혼하자마자 누드사진을 찍을 기회가 생겼다며 내심 좋아했다. 신혼 방에서 신부를 설득해 열심히 누드를 찍고 있는데 ‘열 받은’ 백열등이 터지면서 신부는 울고불고 자신도 혼비백산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1970년대 이후 누드사진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곳은 한탄강 부근. 군대주둔 지역이어서 촬영장면이 군인들 눈에 띄지 않도록 피해 다녀야 했고 주민 신고로 파출소에 끌려가는 일도 잦았다.

찍는 사람이나 모델이나 어수룩한 시절의 추억이지만 오늘날에 이르면 그 차원이 달라진다. 현재 누드를 이용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구본창, 김아타, 변순철, 김준, 데비 한, 김옥선, 최광호 같은 작가의 작품에도 옷을 벗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일반이 생각하는 누드 사진으로 보지 않는다. 작가도 그것을 아름다운 인체를 보여줄 목적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사유라든지, 인종 문제라든지, 삶과 죽음의 문제 같은 철학적인 콘셉트를 표현하기 위해 누드를 찍는다. 따라서 이제는 옷을 벗고 있다고 해서 모두 누드사진으로 단순하게 분류할 순 없으며 신체를 통해 철학과 역사와 사회문화의 코드를 읽어내는 작업의 일환으로 누드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누드가 갖는 다면적인 의미를 ‘누드사진’이란 한마디 말로 통합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진작가 스펜서 튜닉의 집단 누드 퍼포먼스.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2007년 8월 18일 스위스 알프스산맥의 빙하에서 열렸다.
[화보]빙하 앞에서 단체누드…스펜서 튜닉

○ 특이한 누드 공화국

세계적으로 많은 작가들이 누드를 찍지만 누드사진을 하나의 장르로 정해 공모전을 열거나, 야외에서 집단촬영을 하고 해외까지 나가 찍는 경우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지방자치단체도 나서서 이런 행사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왜일까?

사실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서 누드김밥, 누드브라 등 누드란 단어가 쉽게 쓰인다. 한때는 전성기 몸매를 기록으로 남기려는 여성들로 스튜디오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누드전용해수욕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일부 연예인은 누드사진을 공개해 돈을 벌기도 했다.

이렇듯 누드에 대한 금기의식 해체는 디지털카메라의 급속 보급과 맞아 떨어지면서 몇만 원의 적은 비용으로 쉽게 촬영이 가능한 각종 누드사진 모임을 양산했다. 이에 따라 아마추어 작가들이 인체사진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적극 촬영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다른 누드사진 열풍 이유를 찾을 길은 없어 보인다.

누드사진은 작가가 인간이란 피사체를 연출해 사진을 찍는 지극히 주관적 작업이다. 풍경사진은 적절한 시기와 장소만 맞추면 되지만, 누드는 조명 구도 장소 포즈 등을 철저히 계산하고 찍어야 한다. 따라서 시각적으로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고 사진테크닉도 늘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막상 누드를 왜 찍느냐고 물어 보면 돌아오는 대답이 궁색한 작가들도 많다. 일반인이 누드사진에 심취하는 까닭을 ‘유교적 방식의 삶에 대한 해방구’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이는 요즘의 개방적 분위기로 볼 때 맞지 않는 분석이다.

누드사진에 대한 그간의 인식이 부정적인 데는 상당 부분 예술적 표현의 수준에서 기인한다. 아직도 모델이 망사처럼 얇은 천을 치켜들고 해변을 달린다든지 얼굴과 치부를 가리려고 뒷모습을 찍는 구태의연한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설령 연출과 기획이 좋다 해도 같은 곳에서 같은 모델을 놓고 여럿이 찍으니 독창적 예술이 아니라 비슷한 사진의 확대 재생산에 그친다.

철학이나 사상을 바탕으로 작품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예술행위다. 굳이 해묵은 ‘외설이냐 예술이냐’ 논쟁은 필요 없다. 누드를 보고 정신적 반응이 먼저 오면 예술, 육체적 반응이 먼저 오면 외설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하지만 관능적 요소가 있다 해도 창의적이면 관능성은 양념에 불과하다.

현대 누드사진은 남성, 집단, 동성애, 가족 등 주제가 다양해지고 인체를 사진의 오브제로 사용하거나 굳이 아름답게만 표현하지 않는 경향이 가장 두드러진다. 인체의 이상적 모습에서 벗어나고 인공적 부분이 배제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체가 사진 프레임에 하나의 부분으로 배치된다. 에로스와 거리가 먼, 고깃덩이처럼 되레 추해 보이는 맨몸을 통해 사회인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누드(nude) 보다 네이키드(naked) 개념의 사진을 선호하는 젊은 사진작가들도 늘고 있다.

오늘날 세계적 명성을 얻는 스펜서 튜닉의 누드작업은 누드 퍼포먼스로도 불린다. 보통 1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가해 전 세계 공공장소에서 집단누드를 찍는다. 촬영에 참여한 사람에게는 단 1장의 사진만 줄 뿐인데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집단누드가 가져다주는 새로운 체험의 충격, 즉 작가의 창작 의도에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순수 누드에 열중하는 한국의 사진작가들에게는 독창성이라든지 창의성이 돋보이는 주관이 뚜렷한 사진을 찍으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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