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테마 에세이]스승<4>이동욱

  • 입력 2009년 5월 22일 02시 56분


피와 살이 된 ‘잔소리’

따져보면 1년에 4번, 분기별로 상경하는 엄마는 올라올 때마다 내 방을 청소한다. 그때마다 방은 더러워진다. 분명 전날 청소를 했는데 엄마가 내미는 걸레에는 어디서 나온지 모를 먼지와 때가 까맣게 묻어 있다. 이렇게 더러운 방에서 공부를 하면 무슨 글이 나오느냐며 엄마는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걸레를 다시 빨아들고 엄마가 책상 밑으로 들어간다. 문득 엄마의 등이 예전보다 작아진 것 같다. 머쓱해진 나는 몰래 담배를 물고 밖으로 나온다. 내가 나온지도 모르고 엄마는 계속 잔소리를 한다. 잔소리가 밖에까지 들린다. 담배에 불을 붙이기 전에 그 목소리를 듣는다.

“아들 어디 갔냐? 또 담배 꿉냐? 또 꾸어?”

참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다.

남쪽 바닷가에서 자라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자취를 시작했으니 손가락으로 꼽아 세어 보면 양손이 꽉 찬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동물이니까. 나는 가장 인간다운 동물인가, 동물보다 인간적인가. 주먹을 쥐고 이런 생각을 하자 스스로 대견해 보인다. 내친김에 권투선수처럼 주먹을 쥐고 포즈를 취해 본다. 문자메시지가 왔다.

“엄마다 4시 반 도착 반찬 싸왔으니 터미널로 나와라 무겁다.”

전철을 타고 마중 나간다. 출입문 쪽 자리에 앉는다. 팔짱을 끼고 눈을 감는다. 엄마는 내가 혼자 팔짱끼는 걸 싫어했다.

“아들, 그러면 사람이 고독해 보여서 못 쓰는 거라.”

옆자리에 뚱뚱한 남자가 앉는다. 나는 팔짱을 더 조여서 낀다. 양손을 겨드랑이에 넣는다. 마침 환승역에 도착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겨드랑이에 땀이 차 있다. 손에 묻은 땀을 바짓단에 대충 문질러 닦는다. 갈아탄 전철에는 사람이 더 많았다. 혹시 자리가 날까 싶었지만 곧 포기하고 손잡이를 잡는다. 앞자리에 꼬마아이와 아줌마가 앉아 있다. 모자(母子)인 듯 했다. 꼬마가 장난감 자동차로 엄마의 무릎을 문지른다. 엄마가 아이의 손을 가만히 잡는다. 아이가 발을 구른다. 앉은 자리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몸을 뒤챈다. 옆사람이 슬쩍 눈치를 준다. 엄마는 사과를 하고 다시 눈을 감는다. 잠시 후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에 붙은 노선도를 살핀다. 내 앞에 자리가 났다. 그때 아이가 메고 있던 가방을 벗어 엄마의 자리에 놓더니 그 위로 몸을 숙인다. 엄마가 없는 사이 자리를 맡아 놓는다. 처음으로 얌전하게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는 터미널에 도착했을까. 자꾸 휴대전화를 열어보게 된다.

엄마를 배웅하고 돌아온다. 방은 좀 더 깨끗해졌고 냉장고는 가득 차 있다. 샤워를 할 요량으로 옷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수건걸이에 엄마의 팬티가 걸려 있다. 전날 빨아 둔 것일까. 아직 물기가 남아 있다. 발가벗은 채 엄마의 팬티를 가만히 들어본다. 오랜만에 보는 여자의 팬티이고 처음 보는 엄마의 팬티.

×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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