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수덕사 대웅전-난중일기 등 다양
공주-경주 등 3곳서 낭송 뒤 연말 시집 출간
‘육백세 고령이신 몸이/홀연 불질러져 불의 태풍 속에/소신공양이라니./그러나 역사의 영혼이 천벌보다 먼저/거룩한 뼈는 구했으니/우리 몸의 살 비듬에서/정갈한 한지 한 장씩을 울음으로/그 뼈에 입히나이다’(김남조, ‘숭례문’에서)
김남조, 이근배 시인 등 한국시인협회 소속 시인들이 시적 이미지로 재탄생시킨다. 이들은 국보를 소재로 한 시를 지어 공주(23일) 경주(6월 27일) 서울(7월 25일)의 국립박물관에서 ‘국보사랑 시운동’ 낭송회를 펼친다. 16명의 시인이 먼저 작품을 발표했으며 나머지 회원 140여 명도 이에 참가할 예정이다.
시인들은 숭례문(국보 1호)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 84호) 수덕사 대웅전(국보 49호)이 간직한 한국의 전통미와 설화 등을 형상화했다.
‘부소산 에돌아가는/강물 퍼서 더운 몸 식히고/탑돌이하며 천 년 묵언 듣는다//흐르는 물 소리쳐 울게 한,/마음의 냇가 솟은 돌들의/뼈아픈 시간들을/탑신 흘러내려온 그늘에 담근다//항아리 속/오래 묵힌 간장 같은/적막, 먹빛으로 번진다’
정림사지5층석탑(국보 9호)을 소재로 한 이재무 시인의 ‘적막, 먹빛으로 번진다’이다. 석탑의 자태와 주변 정경을 함께 묘사했다.
이근배 시인은 ‘이충무공 난중일기 부서간첩 임진장초’(국보 76호)를 소재로 ‘초서난강’이라는 시를 지었다. ‘어찌 먹물을 찍어 쓴 것이오리까/한 획 한 글자에 들어 있는/펄펄 끓는 나라 사랑이며/애끓는 슬픔이며 아픔이며/살이며 피며 뼈가 녹아 있는 것을’이라는 구절에 충무공의 우국충정을 기리는 시인의 마음이 묻어난다.
국보에 얽힌 설화가 시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국보 49호 수덕사 대웅전에는 수덕도령의 사랑 이야기가 얽혀 있다. 수덕도령은 덕숭낭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세 번 절을 지었지만 덕숭낭자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관음보살의 현신인 덕숭낭자는 결국 벼락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버선 한쪽만 남는다. 이때 옆에 피어 있던 버선 모양의 흰 꽃을 버선꽃이라고 부른다. ‘수덕사 버선꽃’에서 최문자 시인은 이 설화를 ‘덕숭낭자가 되어/수덕사에게 물었다/평생 한쪽 발이 시렸을/사랑을 물었다/아직도 한쪽 맨발로 노랗게 서 있는/꽃 안의 절에게 물었다’고 풀어낸다.
시인의 상상력은 당대를 살았던 선조들의 숨결을 작품에서 되살린다. 국보 164호인 두침(頭枕·백제 무령왕릉 목관 안에서 발견된 왕비의 머리를 받치기 위한 장의용 나무베개)을 다룬 ‘두침(頭枕)의 말’에서 이생진 시인은 ‘왕은 돌아가신 뒤에도/왕비와 잠자리를 함께하셨다/그러던 어느 날/왕이 영혼의 눈을 감자/옆에 누웠던 왕비가 놀라는 바람에/베갯머리에 앉았던 봉황 두 마리/땅에 떨어졌다’라고 노래한다.
한국시인협회는 시인들의 작품을 국보 사진과 함께 시집으로 낼 예정이다. 8월 12, 13일에는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국보의 원형 심상과 시적 상상력’을 주제로 한 세미나도 마련한다. 한국시인협회 최영규 사무총장은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됐는데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이를 외면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행사를 기획했다”며 “이를 통해 우리 국보에 대한 국민의 애정을 되살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