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도중 먹는 음식은 진짜인가요.(김기찬·61·서울 성북구 동선동)
27일 막 내린 연극 ‘죽기 살기’에는 가구점 형제들이 아버지를 죽인 육손이를 위해 바비큐 파티를 열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선홍색 생고기가 불판 위에 올려지면 무대 위는 흰 연기로 자욱해지죠. 육손이는 바비큐를 우적우적 먹습니다. 고기를 굽거나 먹는 장면이 실감 나 진짜라고 착각할 법합니다. 하지만 고기는커녕 무대에서는 불을 뗀 적도 없습니다.
연기의 비밀은 석쇠 안에 설치한 일명 ‘포그(fog) 머신’에 있습니다. 배우들이 리모컨으로 연기의 양을 조절하는 거죠. 육손이가 씹어 먹는 고기는 익히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생(生)베이컨이고 석쇠에 올려진 구운 고기는 갈색이 도는 호밀 빵입니다. 손규홍 무대감독은 “고기 굽는 냄새가 극장에 남아 있으면 극에 집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진짜 고기를 구워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울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동그라미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오디션’은 배우들이 무대에서 삼겹살을 실제로 구워 먹습니다. 새로운 보컬 선아의 환영회를 위해 지하 연습실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는 장면입니다. 불판과 삼겹살 반 근을 비롯해 상추 깻잎 버섯 쌈장 등이 상위에 차려집니다. 다만 공연 전 살짝 ‘초벌구이’ 해놓는다고 합니다. 제작사인 오픈런뮤지컬컴퍼니 고한희 기획팀장은 “고기 상이 무대 위에 있는 시간이 10분 정도 된다”며 “공연장을 가득 채운 고기 냄새 때문인지 공연 후 삼겹살 먹으러 가는 관객이 많다”고 말합니다.
올해 초 공연한 연극 ‘술집’은 술집에서 벌어지는 연극인들의 취중진담을 다뤘습니다. ‘술 당기는 리얼 취중극’을 홍보 문구로 내세운 만큼 배우들은 술을 직접 마셨습니다. 테이블 위를 뒹구는 소주는 물이 채워진 가짜지만 후반부 배우가 직접 따는 소주는 진짜입니다. 빌려온 생맥주 기계로 실제 맥주도 마시고요.
배우들은 “설마 공연 중에 술을 마시겠어?”라며 의아해하는 관객들에게 확인도 시켜줍니다. 극중 배우가 관객에게 직접 술을 권하기도 하는 거죠. 관객들은 물인 줄 알고 마셨다가 진짜 술이어서 깜짝 놀라지만, 가끔씩 술을 더 달라는 관객도 있습니다. 예상 밖의 반응에 당황한 배우들이 대사를 잊기도 했답니다.
음식을 구해오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오디션’은 배우들이 십시일반 주머니를 털어 음식 소품을 구했지만 대부분 협찬입니다. ‘술집’에서 매일 안주로 먹는 찌개는 공연장 인근 술집에서 협찬을 받았습니다. 물론 업소명을 무대 위에 노출해준다는 조건하에서죠. 6월 14일까지 서울 대학로 소극장 축제에서 공연하는 ‘상처와 풍경’은 배우들이 피자 콜라 소주 맥주 등을 먹는데 피자는 한 레스토랑에서 협찬을 받았습니다.
팬들이 음식을 직접 마련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해 뮤지컬 ‘스위니 토드’는 팬이 제공한 파이를 소품으로 사용했습니다. 제작사인 뮤지컬해븐의 안샘 대리는 “열성적인 팬이 파이를 제작하는 회사와 연결돼 있어 41회 공연 동안 매회 40여 개의 파이를 얻었다”면서 “연출진과 상의해 크기 색깔 맛까지 고려한 파이를 맞춤 제작했다”고 합니다. 팬의 정성 덕분에 배우들은 매회 파이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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