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야크와 함께 하는 에코 트레킹]서산 벌천포 황금산

  • 입력 2009년 5월 29일 02시 57분


울창한 숲… 기암 절벽… 여기가 서해안인가

최근 취재여행 길에 멋진 곳을 하나 찾아냈다. 충남 서산의 벌천포(대산읍)라는 작은 포구다. 그 예스러운 포구 풍경과 평화로운 개펄 풍경이 내 눈과 발을 온종일 묶어두었다. 어스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포구 옆 개펄. 아낙네들은 한가로이 체를 쳐 바지락을 건져 올리고 있었다. 낚싯대 둘러메고 느릿느릿 귀가하는 촌로의 발걸음도 한가롭고 여유로웠다. 포구 앞 바다 건너 마치 섬처럼 보이는 태안반도의 여릿한 산자락을 배경으로.

40년 전 나의 초등생 시절. ‘서산 갯마을’이라는 트로트가 나왔다. 조미미라는 여가수가 부른 유행가인데 우연히 들른 벌천포가 내 기억의 심연에 잊혀진 듯 버려졌던 이 노랫가락을 단박에 끄집어냈다. ‘굴을 따랴 전복을 따랴 서산 갯마을, 처녀들 부푼 가슴 꿈도 많은 데, 요놈의 풍랑은 왜 이다지도 사나운지, 사공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구나.’

사공도 없고 더군다나 부푼 가슴의 처녀는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 없는 작은 포구 벌천포. 그래도 노랫말에 담긴 풋풋한 서산 갯마을 풍광은 지금도 여기서 여전해 보였다. 동네 어귀에 산재한 작은 염전부터 모내기를 앞두고 물을 가둔 계단논 다랑이와 물이 빠진 갯골에 얹혀 비스듬히 누운 고깃배, 개펄의 느릿한 둔덕까지.

두리번거리는 낯선 과객에게 한 동네 노인이 포구 뒤로 가보라고 일렀다. 작은 동산을 끼고 도는 포장도로 끝. 포구와 전혀 다른 모습의 바다가 펼쳐졌다. 반달형으로 송림이 우거진 사주(沙柱)인데 해수욕장으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사주는 좌우로 모두 바다다. 이곳도 같다. 왼쪽은 모래 해변, 오른쪽은 개펄의 두 바다다.

벌천포가 자리 잡은 곳은 가로림만(灣)의 초입. 대산읍은 그 지형 자체가 반도로 태안반도와 나란히 선 채 그 사이에 바다를 가두고 있는 형국인데 그게 가로림만이다. 벌천포는 그런 반도 대산에서도 ‘땅끝’이다. 그래서 지도상에는 개펄의 끝이라는 뜻으로 ‘벌말’이라고 표기되기도 한다.

이날 서산에서 벌천포를 ‘발견’한 것은 황금산(대산읍 독곶리) 덕분이다. 이 산은 벌천포의 갯가든 해변이든 어디에 서든지 잘 보이는 해발 130m의 아담한 바닷가 산이다. 벌천포 마냥 서해로 돌출한 서산의 땅 끝 격인데 벌천포의 북쪽, 가로림만의 최북단쯤에 있다. 이 산은 온통 해송과 잡목으로 울창하게 뒤덮였다. 최근까지도 동네 주민 외에는 별반 알고 찾는 이가 없는 무명 산인데 걷기가 유행하면서 찾는 이가 늘고 있다.

이곳 독곶리는 대산에서도 오지다. 유행가 ‘서산 갯마을’이 라디오를 틀 때마다 들려오던 1970년대. 당시 이곳 독곶리는 하루 두세 편 오가는 완행버스로 한 시간 이상 걸리던 서산 보다 오히려 인근 삼길포(현 대호방조제 서쪽 끝)와 뱃길로 닿던 인천이 더 오가기 편했던 곳이다. ‘독곶’이라는 이름도 ‘외따로 떨어져 있는 곶(串·바다를 향해 돌출한 지형)’이다.

예로부터 이곳은 뱅어(일명 실치)와 꽃게가 유명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학교를 다닌 분은 잘 안다. 고추장 양념 발라 연탄불에 살짝 구운 뒤 도시락에 담아오는 뱅어포 반찬이 얼마나 흔했던지. 그 뱅어의 30%가 여기 대산 바다에서 잡혔다. 하지만 뱅어와 꽃게는 사라진지 오래. 대산석유화학공단이 들어서면서부터다. 공단은 황금산 바로 옆에 대산이란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황금산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 휑한 너른 들판의 독곶 해안을 점령했다.

내가 이 황금산을 찾은 것은 아주 특별한 트레킹 코스 때문이다. 산은 작고 볼품이 없다. 하지만 그 숲길은 감탄할 만큼 아름답다. 해안경비부대 초소로 인해 인간 간섭을 적게 받은 덕분이다. 그래도 숲길은 사통팔달 잘 정비돼 있다. 숲 그늘이 짙어 햇볕 쪼일 일 없으니 특히 여성들이 좋아할 만하다. 길도 가파르지 않고 멀지 않아 산책에는 그만이다.

황금산 매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턱의 네 갈래 길에서 곧장 내려 가보라. 스러져 풀섶에 덮인 절터를 지나 온통 돌로 뒤덮인 해변을 만난다. 그 해변은 지형이 특별하다. 주상절리의 절벽해안이다. 해안은 온통 돌무더기다. 추락한 주상절리 암벽의 파편이다.

해변 오른쪽을 막은 산자락 가운데로 가파른 통로가 보인다. 설치된 밧줄을 잡고 올라가보자. 비경의 해안이 숨겨져 있다. 주상절리의 절벽이 해안으로 장대하게 치솟았고 그 절벽은 낙락장송의 소나무로 장식된 모습이다. 향나무가 직벽에 붙어 자라는 울릉도 절벽해안을 연상케 하는 선경이다.

서해에서 주상절리 절벽을 본 것도 희한하지만 그 절벽에 소나무가 뿌리를 박고 자라는 모습은 더더욱 신기했다. 그 바위해안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고는 또 한 번 놀랐다. 코끼리바위 때문이었다. 코끼리가 긴 코를 바다에 대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는 구멍이 뚫린 아치형 바위다. 앞바다로는 세 개로 보이는 암초가 아름답게 수면을 장식하고 뒷 절벽은 온통 소나무로 덮인 이곳. 이곳이 서해안이라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서산=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트레킹 정보|

◇찾아가기 ▽황금산=서해안고속도로∼송악 나들목∼국도 38호선(송산 방향)∼가곡 교차로∼지방도 633호선∼석문방조제∼장고항∼지방도 647호선∼삼봉 사거리∼국도 38호선∼대호방조제∼삼길포∼국도 29호선∼포장도로 끝∼독곶리 해안(가리비조개 식당 촌) △문의: 해성수산(대산읍 독곶리 569-57) 041-665-9633 ▽벌천포=대호방조제∼삼길포∼국도 29호선∼화곡 교차로∼국도 38호선∼지방도 77호선∼대산1 교차로∼6km∼오지리

▽황금산 트레킹=산 중턱 숲에서 길은 네 갈래로 갈린다. 왼쪽은 정상(15분), 오른 쪽은 헬기장(20분). 고개 아래로 내려가는 직행 로는 코끼리바위 해변으로 이어진다. 해변으로 가는 도중 절터 옆 삼거리에서 우측 길을 택하면 이 산을 한 바퀴 도는 순환코스(1시간 소요)로 산불감시초소와 헬기장을 경유해 사거리로 이어진다. 이정표가 없지만 길이 단순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맛 집 ▽벌천포 횟집 ‘장어탕’=이곳 바다에서 많이 나는 붕장어를 매운탕처럼 끓여내는 여름 보양식. 펄펄 산 장어를 3cm 크기로 썰고 된장 고추장 양념에 소주를 한두 잔 부은 뒤 감자를 넣고 즉석에서 끓여낸다. 소주는 비린내 제거용. 작은 냄비 3만 원, 큰 냄비 4만 원. 포구 앞(서산시 대산읍 오지리 338-42). 041-681-5262

◇트레킹 여행상품

승우여행사(www.swtour.co.kr)는 하루 일정으로 황금산과 벌천포를 걷는 트레킹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출발(서울 광화문, 잠실)은 6월 6, 7일이며 참가비는 4만6000원. 아침(간식)과 점심(장어탕) 식사, 여행자보험, 안내비용 포함. 02-720-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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臘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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