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 성취했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은 자기 분야에서 이야기 만들기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경제위기를 예측한 누리엘 루비니 교수도 자기 지식과 경제학적 언어로 좋은 이야기, 들을 만한 이야기 만들기에 성공한 거라고 할 수 있죠.”(작가 이문열 씨) 27일 오후 5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이문열 씨와 뮤지컬 ‘명성황후’를 제작 연출한 윤호진 단국대 공연영화학과 교수가 ‘이야기의 힘’을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한혜원 교수가 진행한 이날 행사는 2009 서울 디지털 포럼의 하나였다.》
이 씨는 이 자리에서 ‘인간은 왜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스러져가는 순간을 말로 포착하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정의한 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유한한 인간 존재를 포착해 영원히 남기려는 욕구, 그리고 남과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인간은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설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자신의 삶을 ‘들을 만한 이야기’로 구성하기를 늘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이디푸스 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예로 들며 이야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신화의 스핑크스는 행인에게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인가?’라는 수수께끼를 내고 그 수수께끼를 맞히지 못하면 행인을 찢어 죽이는 괴물이다. 이 씨는 이 대목을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갓난아기부터 청년, 노인까지 인간의 일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풀이했다.
그는 “이야기를 통해 듣는 지식과 정보는 삶 속의 암호나 수수께끼를 해결할 열쇠”라며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난판은 이 암호와 수수께끼를 풀 이야기가 없다기보다 그 암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한국 사회의 현실을 진단했다. 이 씨는 “이야기는 여러 장르 사이에서 나눌수록 더 풍성해지고 커지는 독특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나 필요하고 어느 시대에도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힘 있는 이야기의 조건’을 제시했다. 그는 1995년 이 씨의 ‘여우사냥’을 원작으로 뮤지컬 ‘명성황후’를 제작 연출해 무대에 올렸으며 1997년 뉴욕 링컨센터 공연 등 국내외에서 호평받았다. 올해 11월에도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윤 교수는 감칠맛 나는 공연, 즉 힘을 가지는 이야기의 세 가지 조건으로 강렬한 이야기, 보편성, 시의성을 꼽았다. 그는 “뮤지컬 ‘명성황후’에는 명성황후의 죽음이라는 강렬한 이야기와 약소국의 서러움이라는 보편적 비극성이 있다”며 “동시에 1995년은 명성황후 시해 100주년으로 당시 한창 명성황후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사회적으로 활발해 공연의 시의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또 “크리에이터들은 항상 관객이라는 실체를 잊지 않으며 작업을 해야 한다”며 “단 한순간이라도 관객을 놓치면 그 순간에 이미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진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