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관객 체험-참여 유도하는 짐 람비-지니 서 설치展

  • 입력 2009년 6월 2일 02시 59분


작품 위로… 작품 속으로… ‘내가 곧 작품’

눈이 어지럽다. 바닥은 온통 오색찬란한 줄무늬 비닐테이프로 뒤덮여 있다. 처음엔 ‘작품’을 밟고 다니는 일이 조심스럽지만 금세 즐거워진다. 가로와 세로, 또 대각선 방향으로 휘젓고 걷는다. 사람과 공간이 어우러지면서 마치 관람객이 턴테이블 바늘로 변신해 레코드 홈 위를 빙글빙글 돌아가고, 전시장에서 경쾌한 비트의 음악이 흐르는 듯하다. 8월 9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는 영국 작가 짐 람비 씨(45)의 바닥설치작업 ‘Zobop’. 전시장의 기둥과 전기배선을 요리조리 피해가느라 만들어진 다양한 패턴은 공간에 활력감을 보탠다. 그는 공간의 물리적 구조를 뒤흔드는 설치작업과 조각, 비디오 등 다채로운 작업으로 주목받는 작가다.

전시공간과의 교감을 보여준 또 다른 설치작업을 만났다. 7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몽인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지니 서 씨(46)의 ‘무지개의 끝’전. 작가는 철을 소재로 한 대규모 설치작업으로 무채색 통로를 만들어 관람객을 그 안으로 초대한다. 전시장을 캔버스의 대체물로 삼아 공간 자체를 온전히 경험하고 싶은 꿈을 현실로 펼쳐낸다.

두 전시는 공간 자체를 대상으로 삼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준다.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시각적 환영을 활용한 이들 작업은 관람객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당긴다. 삶이 그렇듯 이해가 아니라 적극적 참여와 체험을, 시시콜콜한 분석보다 자유롭게 즐기려는 마음을 요구하는 전시들이다. 비교해서 보면 더욱 흥미롭다.

○ 총천연색의 다이내믹 공간

‘Nervous track’전의 개막에 맞춰 내한한 람비 씨는 대표작 ‘Zobop’에 대해 “1999년 첫 개인전에서 공간을 채우면서 동시에 비우는 작업으로 시도했다”며 “건축물에 새로운 피부를 덧씌우거나 문신을 하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래스고 미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스코틀랜드관 작가로 참여했고 2005년 영국의 터너상 후보에 올랐다. 미술과 더불어 밴드와 디제이 활동도 병행하는 그의 작업엔 음악적 정서가 짙게 녹아 있다. 서울 전시에서도 존 레넌, 밥 딜런 등 유명 팝스타의 포스터에 꽃 그림을 오려 붙인 평면작업이 벽에 걸려 있고, 자신이 소장한 레코드판을 시멘트 블록에 삽입한 오브제가 바닥에 놓여 있다. 모든 작업은 서로 어우러지면서 밋밋한 전시장이 아닌, 역동적 리듬이 출렁거리는 심리적 공간으로 여행하는 재미를 안겨준다. 이번 전시를 위해 차 안에 병이 뒹구는 모습을 보여주는 퍼포먼스 성격의 자전적 비디오도 제작했다. 작가는 “우리는 예술작품을 숭배하도록 교육받았지만 바닥설치작업은 전시가 끝난 뒤 벗겨져 쓰레기통에 버려진다”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믿음을 거꾸로 뒤집는 것도 재밌지 않냐”고 말했다. 02-544-7722

○ 무채색의 사유공간

‘무지개의 끝’전이 열리는 몽인아트센터 1, 2층 전시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마름모꼴 구멍이 뚫린 철망을 세워놓은 1층 전시장에선 대각선이 만들어낸 기하학적 공간을 체험하게 된다. 높이 3m의 울타리들이 엇갈리며 만들어낸 통로. 그리 길지 않은데 미로같이 느껴진다. 그물망 사이로 공간이 포개지며 착시효과를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2층 전시장을 부유하듯 가로지르거나 휘휘 늘어져 있는 3∼18cm 폭의 강철 띠. 얼핏 고무벨트처럼 보인다. 철은 무겁고 단단하다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부드럽고 유기적 선이 굽이치는 구조로 변신한다.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만 감상이 가능한 작업은 작가의 내면 풍경을 담아내며 장소에 대한 새로운 시·지각적 경험으로 안내한다.

생물학을 전공하다 미술로 방향을 튼 작가는 회화를 실제 공간으로 확장한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화사한 비닐접착시트를 이용한 회화설치작업에서 이번에 철이란 재료에 도전했다. 그물망과 팽팽한 곡선이 맞물리며 빚어낸 무채색의 가라앉은 공간. 갇힌 듯, 열린 듯 모호한 공간이 ‘결코 머무를 수 없는 통로’의 개념을 사유하게 만든다. 02-736-1446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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