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에서 만나는 깊은 울림

  • 입력 2009년 6월 3일 02시 57분


10년 만에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봉열 씨의 신작 ‘무제-0908’. 종래의 격자구조 화면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섬세한 필치의 선으로 화면을 메운 작품이다. 사진 제공 아틀리에 705
10년 만에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봉열 씨의 신작 ‘무제-0908’. 종래의 격자구조 화면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섬세한 필치의 선으로 화면을 메운 작품이다. 사진 제공 아틀리에 705
한국 모노크롬 회화 선구자 이봉열 10년만에 개인전

꼭 10년 만의 개인전이다.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결코 누락할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로 꼽히는 이봉열 씨(71). 평생 그가 탐색해온 ‘서정적 비구상’의 품격 있는 작품을 접할 기회가 1999년 이후 처음 만들어졌다. 20일까지 서울 서초구 양재동 ‘아틀리에 705’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봉열: 70년대 이후 공간 여정’전. 한국현대미술의 1세대이자 모노크롬 회화의 선구자가 ‘공간’에 대한 모색을 보여주는 초기작부터 근작을 선보인 자리다.

검정 회색 흰색의 단색조 화면에 격자구조가 어우러진 그의 회화가 지닌 매력은 ‘단정한 형식과 단출한 언어’로 압축된다. 절제된 구성 속에서 섬세하게 생동하는 선묘의 아름다움. 추상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완성된 작업은 평면인데도 깊이를 느끼게 하고, 정적 속에서도 미묘한 울림을 이끌어낸다.

전시에 나온 근작을 살펴보면 예전 작업을 지배했던 격자의 흔적이 느슨해지고 선은 자유롭고 부드러워졌다. 회색 톤의 모노크롬 회화로 완성된 단일한 평면들, 그 위로 연필과 색연필로 그린 세밀한 필치의 선이 다양하게 변주되며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미술평론가 심상용 씨는 “(그의 회화가 보여주는) 모색과 쉼의 중첩, 긴장과 완화의 공존은 오늘날엔 매우 드물게 성취되는 미의 한 특성”이라고 평했다.

옐로칩이니 블루칩이니 작가를 상품처럼 취급하는 시끌벅적한 미술시장에 한눈팔거나 타협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세계를 지켜온 작가. 회화 그 자체의 본질을 파고드는 작업을 다양하게 실험해온 여정. 고된 삶과 작품은 하나로 어우러져 과장과 허풍 없는, 단단한 사유와 웅숭깊은 아름다움을 길어 올린다. 02-572-8399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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