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하늘에 헬기가 떠다닌다. 총성과 비명소리도 들린다. 시절이 이토록 어수선해진 것은 도시 곳곳을 활보하는 코끼리 떼 때문이다. 보름쯤, 한 동물원의 코끼리가 우리를 이탈한 것을 시작으로 각 공원의 코끼리들이 펜스를 뚫고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묘책이 떠오르지 않자 당국은 도시를 보호하는 거대한 펜스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한다. 도시 전체를 우리로 만들자는 것이다.(‘코끼리가 떴다’)
소설가 김이은 씨(36·사진)가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 이후 두 번째 신작 소설집 ‘코끼리가 떴다’(민음사)를 펴냈다. 작가는 환상과 현실을 변화무쌍하게 넘나들면서 체제 순응적인 삶과 현대 도시 문명의 핍진함을 비판한다. 코끼리 조련사인 표제작의 주인공이 ‘쇠창살로 가로막힌 우리가 원래부터 거기(도시에)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고 읊조리는 말은 획일화·기형화된 현대인의 삶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김 씨는 “환상의 개입은 현실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전술로 효과적인 부분이 있다”며 “먼 나라, 다른 세상의 일이 아니라 현대인이라면 피부로 겪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다룬 ‘우리들의 이야기’를 썼다”고 말했다.
‘이건 사랑 노래가 아니야’는 일 년간 집 안에만 틀어박혀 온라인으로 모든 삶을 영위해 오던 여자가 병원에 가기 위해 오랜만의 외출을 감행하며 겪게 되는 일을 그려낸 작품. 세상으로부터 격리돼 있던 그의 내면은 비썩 마르고 처진 자신의 몸처럼 황폐해졌다. 숭례문 화재사건, 환자를 거부하는 병원, 과잉 흥분상태의 종교집회…. 여자의 눈으로 마주치는 도시의 모든 일들이 희극적이거나 부조리극처럼 낯설기만 하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