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와 경향신문을 비롯한 좌파 성향의 신문과 전국언론노조 등이 기사 칼럼 독자투고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정치 검찰과 보수 신문의 정치적 타살’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겨레는 5월 24일자 사설에서 “보수 세력과 보수 언론들은 국민의 손으로 뽑힌 대통령의 권위조차 인정하지 않고 헐뜯고 공격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박연차 씨 금품수수 의혹 사건에서도 보수 언론은 그를 무자비하게 난도질해 만신창이로 만들었다”고 썼다. 전국언론노조는 5월 24일 성명을 내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이명박 정권과 검찰, 조중동이 공모한 ‘정치적 타살’이라고 규정한다”고 주장했으며 경향은 27일 이를 기사화했다.
하지만 이들 신문은 ‘박연차 게이트’ 관련 사설과 기사에서 ‘검찰에 앞서 국민에게 고해성사하라’(한겨레·4월 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백, 국민은 참담하다’(경향·4월 8일) 등으로 노 전 대통령을 매섭게 추궁해왔다. 두 신문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까지 ‘검찰의 입을 빌리는’ 기사를 연일 썼으며 노 전 대통령의 해명이 맞지 않을 때에는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5월 28일 사설 “노 전 대통령 서거 ‘언론 책임론’ 무겁게 여겨야”를 통해 “이 점(검찰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는 등)에 관한 한 보수언론이나 다른 언론뿐만 아니라 ‘한겨레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최근 들어 보수 신문의 책임을 부각하고 있다. 경향도 5월 29일 사설에서 “경향신문도 그 (언론)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새기고자 한다”고 썼다.
○ 수사 중 노 전 대통령의 도덕성 상실 질타
한겨레는 노 전 대통령이 4월 7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권양숙 여사가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하자 4월 8일 사설 ‘노 전 대통령, 국민 가슴에 대못 박았다’에서 “청렴성만큼은 믿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가슴엔 대못을 박았다. 게다가 그는 한 오라기의 진정성도 인정받을 수 없었다. …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날 즈음에야 시인을 한 것이다. 기만당한 국민의 분노만 자극할 뿐이다”라고 썼다.
다음 날 ‘검찰에 앞서 국민에게 고해성사하라’라는 사설에서도 “검찰이 발표하기 전 자백과 사과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 내용은 ‘면피용’에 가깝다. … 진정한 참회와 반성은 없고 어떻게든 궁지를 모면해 보려는 안간힘이 느껴진다. … 노 전 대통령이 진실을 털어놓을 대상은 검찰이 아니라 국민이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남김없이 고해성사하고 석고대죄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4월 8일 사설 ‘노무현 대통령의 고백, 국민은 참담하다’에선 “(돈을 받은 것은)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으나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던 노 전 대통령의 위선을 보는 것 같아 말문이 막힌다”며 “혹여 이번 고백이 측근 세력을 비호하기 위한 정치적 고려라면 노 전 대통령은 두 번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5월 12일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가 미국 뉴욕 집을 마련하기 위해 박 전 회장에게서 40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뒤 14일 사설에서 ‘전직 대통령의 아들 멍에 때문이라니’에선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 100만 달러의 용처를 스스로 밝히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억울한 구석도 있겠거니 추측을 자아내기도 했다. 30일 넘게 집요하게 파고드는 검찰 수사의 정치적 의도가 의심받기도 했다. 하지만 뉴욕 집에 대한 새로운 의혹과 노 전 대통령 측 대응을 보노라니 ‘그래도 전직 대통령인데…’라는 기대마저 허물어져 가는 듯하다. 이러고도 자신은 몰랐다는 말만 되풀이할 셈인가”라고 적었다.
또 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는 4월 16일자 기명 칼럼을 통해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집권한 그가… 민주주의든 진보든 개혁이든 함부로 쓰다 버리는 바람에 그런 것들은 낡고 따분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 됐다”며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부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라고 썼다.
○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의혹 보도 쏟아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의혹 보도는 3월 30일 박 전 회장이 500만 달러를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 씨에게 줬다는 사실을 여러 매체가 보도하면서 본격화됐다. 한겨레와 경향도 3월 31일부터 관련 기사를 연일 보도했다.
한겨레와 경향은 모두 1면에 500만 달러 수수 기사를 올리고 3면에 해설을 썼다. 두 신문은 이어 500만 달러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 파헤치는 기사를 잇달아 보도했다. 한겨레는 4월 2일 ‘연 씨, 500만 달러 주인답지 않은 해명’ 기사에서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 씨가 “500만 달러를 빌릴 때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사용처는 확인해야 한다”고 해명한 것에 대해 의혹을 되레 키우는 기폭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4월 7일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이 박 전 회장으로부터 수억 원을 받은 혐의로 체포되자 두 신문은 다음 날인 8일 노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해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거나 검토한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날 한겨레는 ‘형님에서 부인까지…노 전 대통령 도덕성 치명타’ 기사를 함께 실었으며 9일에는 500만 달러가 투자로 위장돼 노 전 대통령 쪽에 건네졌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기사도 게재했다.
4월 9일 정 전 비서관이 100만 달러를 청와대에서 받았다는 구체적 혐의가 드러나자 경향은 10일 ‘박연차, 노 정권 때 사업마다 대박…특혜 의혹’ 기사를 게재해 “각종 특혜를 받은 것에 대한 ‘보은성 뇌물’을 줬다는 해석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도 10일 ‘청와대서 주고받았는데…노 전 대통령 몰랐다 궁색’ 기사에서 “100만 달러가 청와대 안에서 청와대 살림살이 및 대통령 가족과 관련된 돈의 출납을 맡은 정 전 비서관에게 전달됐다는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이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4월 20일 정 전 비서관이 청와대의 특수활동비 12억 원을 빼돌려 뇌물로 받은 3억 원과 함께 차명 관리했다는 사실이 또 드러나자 한겨레는 21일 기사에서 “이 돈이 복잡한 돈세탁 과정을 거친 점을 고려할 때 실소유주가 노 전 대통령이 아니냐는 의혹을 키운다”고 전했다. 경향도 “(빼돌린 돈을) 극히 일부만 사용했으며 대부분 통장에 그대로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돈의 성격이 ‘말 못할 곳’에 사용해야 할 비자금이며 ‘누군가’를 위해 대신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지적했다.
5월 12일 딸 정연 씨가 박 전 회장에게 40만 달러를 송금 받은 사실이 밝혀지자 두 신문의 노 전 대통령 비판 강도는 한층 높아졌다. 경향은 13일 기사 ‘불어나는 수상한 돈…노 사법처리 막판 변수’에서 “검찰이 그동안 권양숙 여사에 대한 재조사와 노 전 대통령 사법처리를 미뤄온 것은 이 같은 추가 혐의를 수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겨레도 14일 ‘달러 용처 말 바꾸기…노 전 대통령 쪽 궁지’ 기사에서 100만 달러 용처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해명이 검찰 수사에 따라 여러 차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