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스무고개가 진행되고 있다. “사람입니까?” 참가자의 질문에 진행자는 “네”라고 대답한다. “남자입니까?” 다른 참가자의 질문에 진행자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머지 참가자가 질문한다. “…여자입니까?” 진행자를 박장대소하게 만든 이 마지막 질문의 주인공이 한국 최초의 추리작가로 손꼽히는 김내성(1909∼1957)이다.
계간 ‘대산문화’는 여름호에 탄생 100주년을 맞은 문학인 김내성, 김환태, 모윤숙, 박태원의 자녀들이 되짚어보는 특별기획 ‘나의 아버지’를 수록했다. 어린 시절 이 방송을 지켜보며 추리작가답지 않은 아버지의 질문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셋째 아들 김세현 KAIST 교수(산업시스템공학과)는 부친을 “웅대하고 논리적인 구성, 과학적 치밀함이 돋보였던 작품과 달리 실생활에서는 매우 비논리적이며 감성적인 데다 언변이 없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지난밤 꿈자리가 나쁘다며 학교에 가지 말라고 하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나의 초등학교 1학년 출석률이 반을 조금 넘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진주탑’ ‘마인’ 등 숱한 인기작을 남긴 작가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친근감을 준다.
소설가 박태원(1909∼1987)의 장남 박일영 씨는 시인 이상, 김기림 등과 함께 ‘구인회’ 일원이자 한국 근대 문학계 모더니즘의 기수였던 부친이 자신이 태어났을 때 만들어준 특별한 서책에 대해 말한다. 그 책은 지인 1000명으로부터 한자를 한 글자씩 받아서 만든 천자문이었다. 6·25전쟁 이후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던 박 씨는 “그렇게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평생을 마치게 되리란 걸 이미 그때 아셔서 그런 정성을 쏟지 않으셨나 싶다”고 말한다. 북에서 타계한 부친에 대해 박 씨는 “이제는 함자에 간판처럼 나붙는 ‘월북 작가’란 말 대신 북에서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계속한 작가라고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폐결핵으로 요절한 문학평론가 김환태(1909∼1944)의 장남 김영진 씨는 중고등학교 교사이기도 했던 부친이 조선 학생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일본인 교사들과 다투고 분노를 털어놓던 모습을 떠올린다. 시인 모윤숙(1909∼1990)의 장녀 안경선 씨는 문학월간지 ‘문예’ 출간에 온 열정을 쏟아 부었던 모친의 문학인생을 되짚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