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작가, 은둔깨고 법정으로…

  • 입력 2009년 6월 4일 02시 59분


“16세 주인공을 요양원 탈출 70대 노인으로 그리다니…”
샐린저 씨, 소설 ‘60년후, 호밀밭을 지나며’ 상대 소송

“10대 소년 콜필드를 70대 노인으로 그리다니….”

세계적으로 650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 D 샐린저 씨(90·사진)가 허락 없이 원작을 모티브로 멋대로 개작한 후속 소설을 쓴 작가를 상대로 판매 금지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3일 영국 인디펜던트지에 따르면 샐린저 씨는 “‘60년 후, 호밀밭을 지나며’라는 소설이 ‘호밀밭의 파수꾼’의 속편인 양 홍보되고 있다”며 저자와 출판사를 상대로 미국 뉴욕 맨해튼 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이 책은 9월부터 온라인 서점 아마존을 통해 판매될 예정이다.

샐린저 씨는 소장에서 “이 책은 내 원작을 훔쳐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며 “특히 내 작품에 등장하는 16세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60년 뒤 76세의 ‘요양원 탈출자’로 그려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밝혔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퇴학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춘기 소년이 세상에 느끼는 반발과 좌절을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출간된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25만 부씩 팔리고 있다.

이번 소송의 핵심은 ‘유명 소설의 등장인물도 디즈니의 미키마우스 캐릭터처럼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 여부’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승소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모방한 후속 소설은 2001년 원작자 유족에게서 판매금지 소송을 당했지만 재판부는 ‘패러디로 볼 수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샐린저 씨의 소송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의 특이한 은둔생활과 깐깐한 성격 때문이다. 그는 1965년을 마지막으로 고향인 뉴햄프셔 시골마을에서 은둔하며 신작을 출간하지 않았고, 그의 소설을 영화화하겠다며 찾아온 스티븐 스필버그를 되돌려 보내 “못 말릴 정도로 까다롭다”는 세간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런 그를 세상으로 끌어낸 것은 항상 법정싸움이었다. 1986년 영국 작가 이언 해밀턴이 ‘샐린저를 찾아서’라는 책을 출판했을 때 샐린저 씨는 자신이 쓴 편지 원문들을 사용하지 말라며 소송을 냈다. 편지에는 찰리 채플린과 결혼한 자신의 ‘첫사랑’ 오나 오닐에 대한 그리움과 아픈 마음이 구구절절 배어 있다.

이 같은 그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당시 충격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을 겪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속편과 영화화에 대한 그의 거부반응은 ‘자기 작품과 주인공에 대한 애정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측근인 조이스 매이너드 씨는 제작자들의 러브콜을 계속 거절한 이유로 “아무에게나 연기를 맡길 수 없었을 정도로 주인공 콜필드에 대한 애착이 컸다”고 밝힌 바 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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