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앙코르 공연 중인 연극 ‘오월엔 결혼할 거야’와 ‘모범생들’은 젊은 연극인들의 재기가 ‘팔딱’거리는 작품이다. 결혼 연애 대학입시… 작품 속 소재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 발을 디딘 소재들에 관객들은 공감과 동시에 고민도 하게 된다. ‘오월엔…’의 희곡을 쓴 김효진 씨(30)와 ‘모범생들’의 연출자 김태형 씨(31)는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 두 사람을 1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 스물아홉 여자들의 돈과 사랑 ‘오월엔…’
모든 건 ‘그놈의 3825만 원’ 때문이었다. 10년 동안 정기적금으로 모은 3825만 원. 먼저 결혼하는 친구에게 몰아주기로 약속했지만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 본 지희가 가져갈 줄은 몰랐다. 이때부터 먼저 돈을 갖겠다는 친구들의 결혼소동이 빚어진다.
연극 ‘오월엔…’은 결혼적령기를 앞둔 29세 여자친구 세 명의 적금 쟁탈전을 그린 작품. 김효진 씨는 이 작품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재학할 때 썼다. 스물여덟 살 때였다. 호텔에서 근사한 남자와 결혼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극본을 완성한 건 단 일주일.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대학로에서 흥행한 ‘오월엔…’은 오디뮤지컬컴퍼니가 ‘웨딩펀드’라는 뮤지컬로 제작해 무대에 올린다. 첫 작품으로 ‘대박’을 거둔 셈이다.
현재 그는 다른 연극의 각색 작업을 맡고 있다.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 대학로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서 김 씨는 강남에서 논술학원 강사로 활동 중이다. “연극을 오래 하기 위해서”다.
“작가에는 세 부류가 있는 것 같아요. 관객을 앞서가는 작가, 관객을 따라가는 작가, 관객과 발맞춰가는 작가. 저는 관객을 앞서가지 못해도 관객과 호흡하는 연극을 하고 싶어요. 뭔가를 주려고 하는 연극, 관객들도 힘들지 않나요? 왠지 폭력적인 거 같아. 연극은 어쨌든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28일까지 서울 대학로 나온씨어터 02-3675-3677
○ 상위 3% 인생을 향한 그릇된 욕망 ‘모범생들’
‘모범생들’은 명문외고 3학년 남학생들의 단체 커닝 사건을 통해 야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엘리트 집단의 모습을 그렸다. 탄탄한 대본, 간결한 세트, 감각적인 연출로 작품에는 힘이 넘친다. 연출을 맡은 김 씨는 한성과학고를 졸업, 카이스트 3학년 자퇴, 한예종 연극원 졸업이라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어릴 적 과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원대한 꿈에 비해 실현가능한 현실은 비좁았죠.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연극은 어디까지나 취미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교양수업에서 브레히트를 배웠죠. 새로운 연극 형식 속에 담긴 에너지가 충격적이었어요.”
‘모범생들’은 2007년 대학로 아룽구지 극장에서 초연된 후 이번이 네 번째 공연이다. 10번 가까이 보는 관객이 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더 많은 사람에게 공연을 보여주고 싶어 그는 현재 극장의 기술감독을 하며 번 돈을 공연에 털어 넣고 있다. 배우에게는 월급 20만 원밖에 못 주지만 끝까지 가볼 생각.
“대학로에는 ‘나쁜 공연’도 많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무슨 얘기인 줄 모르는 어려운 연극, 생각하고 봐야 하는 피곤한 연극, 돈 안 되는 연극…. 그래야 저 같은 젊은 연극인들이 마음 놓고 실험을 하죠.” 8월 2일까지 서울 대학로 SM스타홀 02-744-7304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