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어젯밤에 내 딸내미가….”
“자네 딸내미가 뭐?”
“아니 뭐…. 그냥 ‘밤에 나다니기 무섭다’고 하더라고.”
4일 개봉한 ‘로니를 찾아서’에서 마을 주민들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두고 수군거리는 대사다. “동네 이미지 나빠졌다”고 투덜대던 사람들은 급기야 몽둥이와 호루라기를 든 ‘방범대’까지 만든다.
술 취한 건달들은 조용히 옆을 지나가던 외국인 노동자에게 ‘이런 놈이 왜 여기 있느냐’며 시비한다. ‘외국인 노동자 관련 문제를 진지하게 조명하는 이야기겠거니’ 생각할 즈음, 영화는 가벼운 드라마로 방향을 슬쩍 튼다.
주변의 부추김에 휩쓸려 별 생각 없이 방범대에 끼었던 태권도 사범 인호(유준상). 체육관 사활을 걸고 사재를 털어 준비한 시범대회에서 방글라데시 청년 로니(마붑 알업)와 대련을 벌이다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진다.
동네 사람이 모두 지켜보는 무대에서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진 것. 친했던 꼬맹이는 “엄마가 도장 나가지 말란다”며 작별을 고한다. 아내는 친정으로 떠나고 후배 사범도 사표를 낸다. 방범대 같은 조였던 전자오락실 주인에게 공짜 게임 몇 판으로 위로 받는 신세가 됐다.
그런 인호 앞에 “로니를 찾아주겠다”며 뚜힌(로빈 쉐이크)이라는 청년이 나타난다. 그를 따라다니며 인호는 ‘늘 곁에 있었던 조금 다른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시선을 돌린다. 뚜힌은 방글라데시에서는 엘리트지만 한국에서는 늘 쫓기는 불법체류 이방인이다. 뚜힌은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를 흥얼거리면서 “이 노래 때문에 한국 왔다”고 말한다. 그의 쓴웃음 위로 외국 문화의 단편에 반해 무작정 떠나는 한국 청년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4억6000만 원으로 완성한 저예산 영화지만 단조로운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풍성한 이야기를 담았다. 배우, 감독, 촬영감독, 제작부장 4명만 떠나 3일간 찍었다는 방글라데시 로케 촬영 결말부가 특히 정겹다. 15세 이상 관람가.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