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이십 년 전 이맘때, 난 군복을 입고 새로 이전할 부대의 진지를 파고 있었다. 햇살이 바늘처럼 따가운 여름이었고 군복은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그날따라 나무뿌리며 바위들이 많아 고역이었던 것 같다. 휴식시간이 되자 더위를 식혀줄 아이스크림 하나가 정말로 간절했으니 말이다. 동료 사병들 모두 마찬가지 심정이었는지 다시 삽자루를 들면서도 이구동성으로 아이스크림 타령을 했다. 그러나 칡뿌리라면 모를까, 산속에서 아이스크림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식욕을 없애기 위해 세상에서 제일 맛없어 보이는 아이스크림을 얘기해보기로 했다. 마치 이솝 우화의 신 포도 얘기처럼 말이다. 내가 먼저 떡볶이의 매운 국물을 얼려 만든 아이스크림을 얘기하자 다들 장난스럽게 헛구역질을 했다.
다음으로 나온 것이 피자에 뿌리는 타바스코 소스로 토핑한 아이스크림이었다. 아마 그런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입에서 불이 날 거라고 낄낄거렸다. 그 다음으로 카레나 후추, 그리고 청국장이나 김치를 섞어 만든 아이스크림이 등장하였다.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면 신 김치 조각이 시큼하게 씹히는 거야. 어때? 맛있겠니?” 그런 시시한 얘기를 하며 우리는 무지하게 더웠던 이십대 초반의 여름날을 세월의 강물에 흘려보냈다.
그렇게 아이스크림 얘기를 하던 그 시절, 난 평생의 친구 한 명을 사귀었다. 군에서는 후임이었지만 나이는 나보다 두어 살 더 많은 친구였다. 음악을 좋아해서 함께 재즈나 프로그레시브에 대해 얘기하던 친구였다. 군복무를 마칠 무렵 나는 그 후임에게 사회에 나가서는 존댓말을 하겠으니 가끔 만나자고 했다. 그러자 그 후임은 평생 친구로 지내고 싶다며 앞으로는 서로 말을 트자고 했다. 나는 그 말이 고마웠다.
조현 소설가
※ 6∼8월 ‘테마 에세이’는 새로운 필진이 집필합니다. 소설가 김종광 편혜영 조현 씨, 문학평론가 정여울 씨가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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