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앞 육조거리, 조선 500년간 네 차례 깔았다

  • 입력 2009년 6월 5일 03시 00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의 건립 터 지하에서 드러난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시대별 도로(위)와 한강문화재연구원의 발굴로 밝혀진 도로 표면(아래). 윤완준 기자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의 건립 터 지하에서 드러난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시대별 도로(위)와 한강문화재연구원의 발굴로 밝혀진 도로 표면(아래). 윤완준 기자
발굴현장서 축조방식 확인

동물뼈-기와 - 토기-흙 섞어 기초 다진뒤 마사토로 포장
아스팔트만큼 단단히 축조

조선 500여 년간 경복궁 앞 주작대로인 육조거리를 네 번 새로 깐 것으로 밝혀졌다. 육조거리의 실제 도로 표면을 확인해 본 결과 각 도로가 아스팔트를 깐 것처럼 단단하게 축조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육조거리는 1395년 정도전이 태조의 명을 받아 조성한 거리로 경복궁 광화문 좌우에 의정부 한성부 병조 등 관아를 배치했다.

동아일보는 4일 한강문화재연구원(원장 신숙정)의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건립 터 발굴조사 현장을 찾아 이곳이 육조거리의 실태와 축조 방법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보고(寶庫)라는 점을 확인했다. 이곳은 지난해 10월 육조거리의 시대별 토층을 확인(본보 2008년 10월 15일자 A21면 참조)한 이순신 장군 동상 뒤편의 광화문 지하광장 조성 터에서 경복궁 광화문 쪽으로 100여 m 떨어진 곳이다. 올해 7월 광화문광장이 조성되면 경복궁 광화문 앞 세종로 지하를 발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번 발굴은 육조거리 실체를 직접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조선 건국 시기(14, 15세기)에 처음 만든 육조거리의 도로 표면은 지하 약 1.6m에서 드러났다. 당시 조선의 중심인 이 도로의 표면에는 점성이 없는 굵은 모래인 마사토(磨沙土)가 깔려 있었다. 이 도로의 두께는 기초를 포함해 약 60cm였다.

이후 조선 중기(15, 16세기)에 만든 육조거리와 17, 18세기의 육조거리는 두께가 40cm였고, 19세기에 마지막으로 축조한 육조거리는 두께가 80cm에 달했다. 시기별 육조 거리마다 2∼5층으로 기초를 다져 놓았다.

한강문화재연구원이 분석한 육조거리 축조 방법은 이렇다. 우선 동물 뼈와 기와, 토기 등을 흙과 섞은 뒤 여러 차례 도로의 기초를 다졌다. 도로의 표면은 질퍽한 진흙이 아닌 마사토로 포장했다. 그 결과 비록 흙길이지만 걸어 다니기에 안락하고 배수가 잘되면서도 요즘의 아스팔트만큼 단단한 도로가 완성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로가 훼손되자 같은 방식으로 그 위에 새 육조거리를 만들었다.

이는 돌을 기초로 만든 고대의 도로 축조 방식과 다른 것이다. 한강문화재연구원 박준범 부원장은 “고려시대 산성 축조 기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육조거리를 완전히 새로 축조한 것은 네 차례였으나 폭우 등으로 훼손된 일부 도로를 보수한 것은 30∼40차례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움푹 파인 구덩이를 도자기와 뼈로 메운 흔적도 뚜렷했다. 한강문화재연구원은 이곳의 발굴 성과를 5일 지도위원회에서 공개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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