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수상 앤 타일러 신작
극적으로 만나 결혼한 남녀
인생은 극적이지 않고 겉돌기만
가족을 위해 아침상을 차리며 아내 폴린이 말한다. “옛날 옛적에 생일을 맞이한 여자가 있었어요. 생일은 1월 5일이었고, 그 여자는 스물세 살이었지요.” 어지럼증으로 몇 차례 쓰러진 뒤 총기가 흐려진 시어머니가 대꾸한다. “아니, 네 생일도 그날이잖아! 너도 바로 어제 그 나이가 됐고.”
폴린은 무시한 채 계속 말한다. “그 여자는 인생의 바닥까지 떨어져 있어서 자기 나이에 민감했죠. 하지만 다행히도 남편은 아내의 생일을 완벽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모든 노력을 바치기로 결심했죠.…절대로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진 않기로 했어요. ‘여보, 생일 축하해요. 철물점에 가서 당신이 필요하다고 했던 대형 잼 냄비 하나 들고 와요!’”
아내의 가시 돋친 말에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억누르고 있던 남편 마이클이 마침내 좌절한다. 폴린의 생일날 자신이 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잼 냄비가 필요하다고 했던 건 아내였고 선물을 고민하다 그 말을 떠올렸을 뿐이다. 그는 아내가 케이크와 꽃, 향수 선물 따위를 바라고 있었는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말한 적이 없으니까!
1989년 ‘종이시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앤 타일러의 장편소설 ‘아마추어 메리지’는 말 그대로 결혼생활에 서툴고 삶에 미숙한 ‘아마추어’들의 이야기다. 극과 극의 성격과 이상(理想), 결혼관을 가진 두 남녀 폴라와 마이클의 일상은 사사건건 충돌과 갈등으로 시끄러우면서도 동시에 권태롭고 지루하다. 물론 이들이라고 시작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충동적이며 다혈질인 데다 직설적인 폴라와 신중하고 꼼꼼한 마이클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하다. ‘결혼이란 두 영혼의 엮어 짜기’라고 믿는 폴라는 별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공유하려 하지만, 마이클은 ‘결혼은 두 사람이 나란히, 그러나 따로 떨어져서 걸어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일이 제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폴라가 함부로 내뱉는 말에 마이클은 상처를 받는다. 교외에서 인생을 즐기면서 살기 원하는 공상적인 폴라에 비해 마이클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개구리 죽이기’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이 관계의 단면을 잘 보여 준다.
마이클이 어느 날 가게 손님에게 ‘개구리 죽이기’란 말을 배웠다며 무슨 뜻인지 맞혀 보라고 한다. 폴라가 모르겠다고 하자 그는 ‘어떤 일을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조금씩 천천히 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물이 든 솥에 개구리를 넣고 불을 때면 온도가 조금씩 높아져도 뜨거운 것을 느끼지 못하다가 결국 죽는다는 것. 폴라는 정색을 한다. “나한테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어리둥절해하는 마이클에게 폴라가 다그친다. “우리 결혼 생활이 개구리처럼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안 그래요? 당신은 그게 내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마이클은 기가 막힌다. “당신 제정신이오?”
서로에게 끊임없이 실망을 안겨주고 비수가 될 말을 던지며 상처를 주고받는 이들 부부가 과연 부모로서는 프로다울 수 있을까. 가출해 소식이 끊긴 큰딸은 손자를 안고 나타나고, 아들은 가정을 꾸린 뒤 남처럼 구는 데다 막내딸은 부모의 결혼생활에서 받은 영향 때문인지 결혼 생각이 없다고 한다. 소설은 흔히 있을 법한 일상의 소소하면서도 치열한 분쟁들과 등장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엮어가면서 결혼과 인생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한다. 이들은 실패한 결혼생활을 돌이키며 스스로를 ‘아마추어’라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계속해서 실수를 저지르고 오해를 빚어내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처음인 인생에서 ‘프로’인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지 질문해 보게 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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