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어학원에 다니는 한 네팔 남학생이 강의 중 말없이 새끼손가락을 자꾸 들어올렸다. 한국인 여자 강사는 그 동작을 자신을 ‘애인’으로 여긴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곤 계속 무시했다. 그러자 남학생이 갑자기 강의실을 나가버렸다. 네팔에서 새끼손가락 세우기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의미로 쓰인다.
승리의 상징으로 쓰이는 손가락 ‘V 사인’은 국가에 따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손바닥이 바깥쪽으로 향한 V인 경우만 승리를 의미한다. 손등을 상대방에게 향하게 한 채 V를 만들면 ‘죽어라’라는 욕이 된다. 반면 터키와 그리스에서는 손바닥을 밖으로 향한 채 V 사인을 하면 외설스러운 의미를 갖는다.
인간의 손은 입이나 코, 머리, 팔 등 다른 신체부위와 결합해 3000여 가지의 다양한 동작을 생산해낸다. 비교문화를 연구하는 저자는 ‘소리 없는 언어’인 손짓 동작들이 갖는 다양한 의미와 문화적 차이를 설명했다. 문화가 변하면서 손짓 언어도 달라진다. 가령 과거 우리가 흔히 쓰던 ‘전화할게’라는 손짓 언어는 집게손가락으로 다이얼을 돌리는 동작이었지만 요즘은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펼쳐 귀와 입 언저리에 대는 서양식 손짓 언어가 이를 대신한다. 저자는 소수 언어가 점차 사멸되고 있듯 각 지역의 문화와 가치관을 반영하는 고유의 전통 손짓 언어가 점차 미국 중심의 손짓 언어에 밀리는 ‘손짓 언어의 글로벌화’ 현상을 우려한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