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여성동아 6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고현정(38)이 드라마 '선덕여왕'에 캐스팅됐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그가 선덕여왕을 연기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연은 한참 후배인 이요원이었고, 그는 실권을 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후궁 미실 역을 맡아 사람들을 의아하게 했다.
타이틀 롤을 후배에게 넘겨준 심정을 묻자 그는 "애초 미실 역이 탐났다"고 말했다.
"대본을 읽으면서 스스로 선덕여왕 역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 PD와 사전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캐스팅을 놓고 고민 한 듯하더라고요. 제가 선덕여왕을 맡기에는 나이 등 여러 가지가 맞지 않았어요. 작품을 위해서라도 그 역에 필요한 조건들의 최대공약수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죠. 덧붙여 말하면 전 이렇게 스케일이 큰 작품에서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캐스팅이 적절하게 잘된 것 같아요."
5월 말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선덕여왕'은 선덕여왕의 출생부터 왕위에 오르기까지 일생을 다룬 작품. 고현정이 맡은 미실은 선덕여왕의 증조 할아버지 진흥왕, 아버지 진평왕 등과 몸을 섞으며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악랄해 보일 수 있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는 여자라 생각해요. 힘으로만 치면 왕이 될 수도 있었지만 시대를 잘 타고나지 못했기 때문에 왕후의 자리를 노린 거잖아요.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동원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열망을 처절하게 드러내죠. 그런 면에서 매력을 느꼈어요. 자기 뜻을 과감하게 펼치는 과정에서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하고, 여러 왕을 섬겼는데 오늘날 너무 음탕한 여자로만 부각돼 안타깝죠. 미실이 가진 인간적인 욕망을 제대로 표현해보고 싶어요."
이번에 그는 데뷔 후 처음으로 사극에 출연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장르이기 때문인지 그는 긴장한 듯했다.
"단 한 장면도 쉽게 찍은 적이 없어요. 말을 타고 검을 휘두르는 등 액션 장면도 있었고, 왕과 대신을 유혹하는 장면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더라고요. 촬영 후 미리 첫 회 방영분을 봤는데 부족한 면이 많이 보여 아쉬웠죠. 앞으로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극중 그는 권력을 쥐기 위해 많은 남성과 연분을 맺는다. 독고영재, 전노민, 정웅인 등 남자배우들에 둘러싸여 촬영을 하는 그는 "다들 잘해줘서 좋다"며 웃었다.
곁에 있던 독고영재에게 고현정이 예전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냐고 묻자 "많이 변했다"고 답했다.
"그때보다 터프해진 것 같아요(웃음). 16년 전에는 우리나라 모든 남성이 원하던 순수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는데 지금은 카리스마가 대단해요. 현정 씨가 회식 때 어찌나 활발하게 분위기를 주도하던지 저희가 우스개로 '다시는 회식하지 말자'고 했을 정도예요."
선덕여왕 역을 맡은 이요원, 진덕여왕 역의 박예진 등 후배 배우와 경쟁을 앞둔 그의 심정은 어떨까?
"일단 선덕여왕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니까 시청자는 당연히 그의 입장에서 작품을 볼 거예요. 그가 어떻게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지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테니까요. 그런데 드라마 초반에는 미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이에요. 그러다 이야기가 차츰 선덕여왕 쪽으로 옮아가는데 그쪽으로 시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이요원에게 도전하는 고현정의 처절한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몰라요(웃음)."
미실은 매력적인 팜므 파탈. 그에게도 극중 미실과 비슷한 면이 있는지 궁금했다.
"촬영이 많이 진행된 편이 아니라 성격적으로 비슷한 점이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전 평소 스스로를 순한 편이라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제게도 악한 면이 있을 것 같아요. 누구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듯 미실도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지만 온순한 면이 있을 거예요. 때문에 조율을 잘하면서 연기해볼 생각이에요."
그는 30세부터 70세까지 폭넓은 연령층을 연기해야 한다. 이에 대해 그는 "분장팀이 알아서 잘해줄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오로지 어떻게 연기를 하느냐에 더 신경을 쓰는 듯했다.
"야망이 있는 여자를 연기하게 돼 즐거워요. 일정한 리듬으로 흘러가는 역할과 달리 박자를 깨기도 하면서 연기하는 느낌인데 굉장히 재미있어요. 작가가 미실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장면을 써주기만 하면 잘 잡아서 터뜨려보고 싶어요. 저도 노력하고 있고 함께하는 배우들과 호흡도 잘 맞기 때문에 시청률 역시 분명 잘 나올 거라고 기대해요."
글 정혜연 기자 | 사진 홍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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