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서비스, 세계로 확산시키는 게 꿈”
LG그룹이 1996년 설립한 ‘LG상남도서관’은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있다. 그러나 LG 임직원들조차도 이 도서관의 위치를 제대로 아는 경우가 드물다. 주택가에 위치한 지상 3층, 지하 1층짜리 가정집을 개조해 만들었기 때문에 도서관 문패를 보지 못하면 지나치기 일쑤이다.
이 도서관에는 서고(書庫)가 없다. 서버(server)만 있을 뿐이다. 한국 최초의 디지털 도서관이다. 흔히 공공도서관 운영비의 80%가 인건비라고 하는데 이 도서관은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규 직원은 관장을 포함해 10명에 불과하다.
최근 도서관에서 만난 정윤석 관장(52)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도서관을 만들라’며 자신이 살던 이 집을 내놓았다. LG의 역사와 숨결이 담긴 공간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경쟁력 있는 도서관을 만들려니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했다”고 회고했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열람자들이 찾아오지 않아도 되는 도서관’을 만들자는 구상을 했던 것이다. 정 관장은 1983년 LG그룹 홍보본부로 입사한 홍보맨 출신이다. 1993년 LG연암문화재단의 도서관 설립팀장을 맡으면서 LG상남도서관의 역사가 그의 개인사(個人史)가 됐다.
정 관장은 “설립 초기에는 이공계 전공자들이 PC통신으로 필요한 논문을 신청하면 관련 데이터를 팩스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했다. 이렇게 온라인으로 제공된 비싼 이공계 저널이나 논문만 530만여 편에 이른다”고 말했다. 편당 1만 원으로 쳐도 530억 원의 구입비용을 대신 내준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저작권법이 크게 강화되면서 이런 방식의 논문 제공 서비스는 중단됐다. 대신 청소년이나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가 개발됐다.
이 도서관은 요즘 세 바퀴의 핵심 서비스로 돌아간다. △전문 연구자를 위한 정보 자원 사이버 서고인 LG ELIT(www.lg.or.kr) △청소년 과학 포털인 LG사이언스랜드(www.lg-sl.net) △시각 장애인과 고령의 노인을 위한 ‘책 읽어주는 도서관’(voice.lg.or.kr) 이다. ‘책 읽어주는 도서관’을 이용하면 동아일보 기사도 휴대전화에 내려받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
정 관장은 얼마 전 ‘제22회 정보문화의 달’ 기념식에서 정보문화 확산과 정보격차 해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그에게 수상 소감을 묻자 꿈 이야기가 대답으로 돌아왔다.
“오프라인에서는 책도 없고 열람자도 없는 도서관이지만 온라인상 연간 방문객은 600만 명에 이릅니다. ‘책 읽어주는 도서관’ 서비스 등을 세계로 확산시키고 싶습니다. 그것이 관장으로서의 제 꿈입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