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사진)이 8일 휴직계를 제출했다. 이 9단은 이날 친형 이상훈 7단을 통해 한국기원 사무국에 휴직계를 내고 2009년 6월 30일∼2010년 12월 31일 18개월간 국내외 공식기전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내 랭킹 1위인 이 9단의 휴직은 바둑계에 파문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 기전 참가 여부
이 9단은 9∼12일 열리는 TV아시아속기바둑선수권전에 참가할 예정이다. 휴직 의사를 표명한 뒤 그는 3일 물가정보배 본선 A조 리그에서 한웅규 초단에게, 6일 후지쓰배 8강전에서 창하오 9단에게 패했다. 6월 말까지 대국 일정은 유보 상태여서 TV아시아속기바둑선수권전이 마지막 대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가 타이틀을 갖고 있거나 본선에 오른 기전. 그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국수전의 경우 새 예선전이 시작됐으나 그의 휴직이 변수로 등장했다. 타이틀 보유자의 휴직은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국수전을 주관하는 한국기원 관계자는 “본선 대국을 시작하기 전 타이틀 반납 여부를 확정지어야 할 것”이라며 “도전기 대신 본선 토너먼트 결승에 오른 2명이 국수 결정전을 치르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본선에 올라있는 GS칼텍스배, 물가정보배, 명인전, 삼성화재배도 모두 기권패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바둑리그 참가를 둘러싼 논란도 일고 있다. 형 이상훈 7단은 “동생이 ‘소속팀(구이저우·貴州)을 꼭 우승시키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한 바 있어 이 9단이 중국 리그에 참가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 9단이 “심신 모두 바둑 둘 상태가 아니다”며 휴직계를 낸 것과는 다른 행동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 7단은 “동생이 중국에서 두는 것과 한국에서 두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듯하다”며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 한국기원, 기사회와 이세돌 9단의 화해 가능성
이 9단이 휴직계를 낸 것은 지난달 26일 기사총회에서 중국리그에는 참가하고 한국리그에 불참하는 등 이 9단의 최근 행보에 대해 표결로 ‘조치가 필요하다’고 결론내린 것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당시 총회에 참석한 한 기사는 “총회에서 징계가 아니라 ‘조치’라는 용어로 표결한 것은 기사들이 이 9단의 행동에 문제를 느꼈고 (이 9단이) 각성하면 좋겠다는 의미였는데 그걸 징계 요구로 오해한 것 같다”며 “이 9단의 ‘휴직’이라는 강수를 두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 9단과 한국기원은 오랫동안 갈등의 골이 깊어져왔다. 바둑계에선 한국기원과 이 9단이 화해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으나 현 상황에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한 기사는 “여러 기사들이 여러 차례 중재를 시도했지만 이 9단의 태도가 완강하고 한국기원도 이를 부추긴 측면이 있어 성사되지 않았다”며 “한국기원 이사장이 나서도 해결이 쉽지 않을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다”고 말했다. 이 7단도 “동생에겐 화해보다 빨리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더 필요하다”며 “화해를 하더라도 상처가 아물지 않으면 바둑을 둘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