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뒤지고… 물리학교수에게 자문하고…
“모르고 떠들진 말자” 새벽까지 대본 공부
“난해한 양자역학의 세계를 다룬 연극 ‘코펜하겐’의 배우들은 어려운 대사들을 소화했나요?” (정한나·26·서울 강동구 천호동)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슈뢰딩거의 고양이, 보어의 ‘상보성 이론’, 우라늄 235와 238의 차이…. 7일 막을 내린 ‘코펜하겐’(사진)은 과학연극시리즈 4부작 중에서 가장 난해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세기 양자역학 혁명을 이끈 덴마크 과학자 닐스 보어와 독일 과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간에 얽힌 미국과 독일의 핵무기 개발 비화를 넘어 심오한 양자역학의 세계를 함께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물리학의 천재로 꼽혔던 리처드 파인먼은 “양자역학의 세계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란 말을 남겼고,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우연이 지배하는 양자역학의 세계에 끝까지 불신을 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은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은 채 양자역학의 세계를 오묘하게 풀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거기에는 2000년 토니상 최우수연극상을 수상할 만큼 탄탄한 각본이 큰 몫을 했습니다. 하지만 배우들이 그저 앵무새처럼 대본을 외웠다면 연극은 실패했을 겁니다. 보어 역의 남명렬, 보어의 부인 마그리트 역의 김호정, 하이젠베르크 역의 이상직 씨는 “최소한 모르고 떠드는 일은 없도록 하자”는 각오로 4개월에 가까운 연습기간 중 3분의 2가량을 ‘대본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양자역학 관련 서적과 제작진이 정리한 A4용지 수백 장 분량의 인터넷 자료를 독파하고, 물리학과 교수들을 초빙해 자문했답니다. 대본을 번역한 양영일 퍼시스가구 부회장 등 이 연극을 국내 초연했던 서울대 공대 연극반 출신들의 인맥이 큰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배우들끼리 서로의 대사에 대해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무지의 베일을 하나하나 벗어냈다고 합니다.
김호정 씨는 “나야말로 진짜 과학의 문외한이니 나를 넘어서면 관객도 이해할 것”이라며 다른 배우의 대사와 연기를 모니터해 줬답니다. 특히 남 씨는 비슷한 시기에 ‘한스와 그레텔’에서 긴 관념적 대사를 독백으로 소화하는 한스 역을 맡아 “연기 인생에서 가장 머리 아픈 시기였다”고 말합니다. 공교롭게도 보어는 1941년 나치 치하의 덴마크에서 하이젠베르크와 논쟁을 벌인 뒤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탈출하고, 한스는 같은 해 영국으로 건너가 유대인학살을 중지하는 대가로 정전협상을 벌이다 30년간 비밀감옥에 수감된 골수 나치당원입니다.
“대사의 분량은 한스 역이 더 많지만 ‘코펜하겐’의 보어는 일반인들이 전혀 접할 수 없는 세계여서 이해가 더 힘들었습니다. 매일 오전 4시까지 대사를 외웠는데 워낙 전문적 내용이 많아 토씨 하나 틀리지 않으려다 보니 정말 고생 많았죠.”(남명렬 씨)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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