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돌아오라, 탐욕의 江을 가로질러…

  • 입력 2009년 6월 13일 02시 47분


◇전설 없는 땅 1, 2/후나도 요이치 지음·한희선 옮김/424쪽 1만2000원, 376쪽 1만1000원·시작

남아메리카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의 국경지대. 드넓고 황량한 이곳에 ‘전설 없는 땅’이라고 불리는 고갈된 유전지대가 있다. 척박한 불모지였기 때문에 사람이 살지 못했던 곳이지만 언젠가부터 콜롬비아에서 온 떠돌이 400여 명이 여기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꾸려 살아간다.

이곳의 주인은 따로 있다. 베르톨로메오 엘리손도가 그다. 그는 3만 ha의 목장과 유전이 있는 2000ha의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유전지대의 석유가 바닥이 나고 목장 경영이 부진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이곳에서 우연한 계기로 초전도재료의 원료가 되는 희토류(원자번호 57∼71번의 15개 원소에 스칸듐, 이트륨을 더한 17개 원소)가 발견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일본에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야마모토 슈고로상’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등을 수상한 이 작품은 서구 열강의 침략에 황폐화된 남아메리카 국경지대를 배경으로 돈과 이권을 둘러싼 인간들의 욕망과 치정, 배신을 누아르 풍으로 그려냈다. 콜롬비아, 베네수엘라인뿐 아니라 물라토(남미의 백인과 흑인의 혼혈인종), 메스티소(중남미 원주민과 백인의 혼혈인종), 황인종 등 온갖 인종이 한자리에 모여 갈등을 빚게 되는 제3세계의 국경이 배경이 되는 만큼 스케일이 크다.

유전지대에서 희토류가 나오자 일본 기업인들이 끈질기게 찾아와 발굴권 관련 계약을 하자고 요청한다. 엘리손도는 유전지대를 떠도는 콜롬비아인들을 강제로 쫓을 수 없다면서 ‘인권문제’ 혹은 ‘자국 베네수엘라의 국익문제’ 등을 운운하며 시간을 끈다. 하지만 그것은 계약금을 높이기 위한 술수일 뿐이다. 그는 콜롬비아인들이야 죽든 말든 상관이 전혀 없는 바스크인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자인 그는 발굴권 계약으로 번 돈을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투쟁을 위한 비용으로 조달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엄청난 돈 앞에서 가족들의 꿍꿍이는 모두 제각각이다. 우선 큰아들 라몬이 우발적으로 아버지인 엘리손도를 살해한다. 그러자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단숨에 눈치 챈 둘째 아들 알프레도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형을 다시 살해한다. 결국 집안의 모든 재산과 아버지의 정부였던 베로니카까지 차지하게 된 것은 교활하고 야비한 둘째 알프레도. 그는 희토류 채굴을 위해 유전지대에 살고 있는 콜롬비아인들을 내쫓으려고 돈으로 일부를 매수해 그들을 분열시키려 한다.

그런데 이 땅에 사연이 있는 다른 인물들이 있다. 칠레의 좌익혁명 단체에 속해 있는 가지 시로와 혁명이나 투쟁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일본인 단바 하루아키다. 이들은 3년 전 각자의 목적 때문에 이곳에 2000만 달러를 숨겨뒀는데 돈을 찾기 위해 이곳에 다시 왔다가 난민으로 살아가는 콜롬비아인들과 교류하게 된다. 이 중 단바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안고 지내는 콜롬비아인들과 어울리면서 점차 연민을 느낀다. 어느 새 이들의 새 지도자로 떠오른 단바는 알프레도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이게 된다.

풀 한 포기 나지 않아 전설조차 없던 땅. 하지만 이 땅에서 한때 석유가 나왔고 이제는 희토류가 나오면서 이권을 찾아 몰려든 인간들이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 간다. 인간의 광기와 정열, 비정한 현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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