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었다 타박 말라 장미의 순정은 세월을 세지 않는다

  • 입력 2009년 6월 15일 02시 59분


사진작가 주명덕 씨의 ’장미’. 그는 시들어가는 꽃에서 소멸의 의미를 읽어내고자 한다. 사진 제공 한미사진미술관
사진작가 주명덕 씨의 ’장미’. 그는 시들어가는 꽃에서 소멸의 의미를 읽어내고자 한다. 사진 제공 한미사진미술관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13일 오후 6시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타워 20층 한미사진미술관에서는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다. 한국의 대표적 사진작가인 주명덕 씨(사진)의 칠순 잔치 겸 ‘장미’를 주제로 한 개인전의 개막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20대 시절 처음 만나 40여 년간 우정을 나눠 온 사진작가 강운구 씨(67)는 이날 축사에서 “그는 친구기도 하지만 내 형이자 스승이기도 하다”며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오랜 벗에 대한 곡진한 마음을 내비쳤다. 이어 200여 명의 하객 앞에 선 주 씨. 짧고 강건한 다짐으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내 마음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밖에 없다. 칠순이라지만 이제부터 더 열심히 하겠다.”

주 씨는 고아, 기지촌, 인천의 차이나타운 등 소외된 계층과 지역을 독특한 감성으로 담아낸 기록 사진으로 출발해 전통문화의 미적 가치와 도시 풍경 등을 발표하는 등 가장 한국적 이미지를 생산하는 작가로 평가된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지난해부터 작업해온 신작을 16×20인치 젤라틴 실버 프린트와 대형 잉크젯 프린트의 두 가지 형태로 선보였다. 칠순 작가의 새로운 도전은 장미를 찍은 흑백 정물사진으로 응축돼 있다. 이슬을 머금은 채 활짝 피어난 꽃이 차츰 시들어가는 과정을 특유의 감성으로 길어 올린 정물 사진은 때론 탐미적이고 때론 섬뜩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명의 기운이 서서히 스러져 가는 장미. 작가는 곰팡이가 슬고 매캐한 냄새가 스며 나올 듯한 마른 꽃에서 소멸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읽어낸다. 그는 “장미 사진들을 보니 내 삶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어찌 그의 인생만 담겨 있을까. 꽃잎이 말려 올라가고 물기가 말라 형해만 남은 장미 사진 속에는 우리네 인생사가 오롯이 녹아 있다. 그의 사진이 단순한 장미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7월 25일까지 열리는 전시에 맞춰 사진집도 출간됐다. 1968년에 찍은 인천의 ‘차이나타운’전도 함께 열린다. 관람료 3000∼5000원. 02-418-1315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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