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개봉하는 ‘여고괴담5-동반자살’ 도입부에서 여고생 네 사람이 텅 빈 성당에 모여 함께 외우는 기도다. 언뜻 소설 ‘삼국지연의’의 유비 관우 장비 3형제가 도원에서 하늘에 올린 결의문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네 소녀의 결말은 그들만큼 아름답지 못하다.
으스스한 촛불 주위에 둘러앉아 맹세를 나눈 뒤 손가락을 칼로 그어 피의 서약까지 쓴 네 사람. 그 가운데 한 소녀만이 먼저 죽음을 맞으면서 끔찍한 ‘귀신 살인극’의 막이 오른다. 맹세의 내용대로 남은 소녀들이 한 명씩 끔찍한 방법으로 죽어가는 것이다.
1998년 만들어진 여고괴담 1편은 한국 영화시장에 공포 장르 붐을 되살린 화제작이었다. 비인간적 입시 경쟁에 치여 사는 10대들의 고민과 집단따돌림 문제를 짚어내 평단과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1년 뒤 개봉한 2편 ‘메멘토 모리’는 동성애라는 파격적 소재를 진지하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3편 ‘여우계단’(2003년)과 4편 ‘목소리’(2005년)도 변화하는 학교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
하지만 ‘여고괴담 10주년 기념작’임을 밝힌 5편에는 전작들만큼의 현실감이 없다. 네 주인공은 모두 상습적 가정폭력, 원하지 않은 임신 등 자살을 고민할 만한 이유를 갖고 있다. 하지만 시각적 자극에 몰두한 영화는 캐릭터의 속사연에 다가가지 못한다. 각자의 고민은 끝까지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목을 꺾는 등의 잔인한 살인 장면만 개연성 없이 반복된다. 캐비닛 속에 쌓인 시체는 왜 그렇게 됐는지 알 길 없는 놀라운 구경거리일 뿐이다.
5545 대 1의 경쟁을 뚫고 뽑혔다는 주인공들은 아이돌 그룹처럼 시원스러운 외모를 뽐내기에 바빠 보인다. 그들이 토로하는 ‘고민’은 12년 전 ‘비트’의 로미가 멋스럽게 짊어졌던 그것보다도 가볍다.
‘한날한시 함께 죽자’는 맹세는 어떻게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될 수도 있다. 이 영화의 소재는 자살이 난무하는 요즘 세태를 어느 정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소재가 예민한 만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좀 더 조심스러워야 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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