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첫 마디에 견미리는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했다. 40대 중반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동안의 비결. “정신없이 살다보니 덜 망가진 것 뿐”이란 게 그녀의 대답이었다.
배우이자 세 자녀를 둔 엄마.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 이미지는 그저 선입견에 불과했을 뿐, 견미리는 “밖에 있다가도 집안 일이 생기면 곧장 뛰어 들어가는” 보통의 ‘워킹맘’이었다.
MBC 드라마 ‘이산’을 끝내고 가진 제법 긴 공백기는 대입 수험생을 둔 엄마로서 “전념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 출연 제의가 왔고 “큰 딸 대학 보내야한다”며 내내 거절하다가 감독의 단 한 마디에 의지를 꺾고 만다. “영화 ‘추격자’의 김윤석이 상대역이고, 이번에도 형사라고?” 그 작품이 11일 개봉된 영화 ‘거북이 달린다’(감독 이연우·제작 씨네2000)였다.
“전 ‘검토해보겠다’는 식의 빈말은 안 해요. 어차피 안 하고, 못하는 건데…. 갑자기 궁금해지더라고요. 도대체 김윤석 씨가 무슨 마음을 먹고 또 형사를 하려는 걸까.”
세상의 엄마들이 자신의 이름을 잃어가듯 ‘거북이 달린다’에서 견미리가 맡은 역할도 형사 조필성의 아내 혹은 딸 옥순의 엄마로만 불린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엄마가 그녀는 “욕심이 났다”고 했다.
‘무명씨’의 엄마는 한편, 억척스럽다. 견미리는 그 지독한 생활력을 대개의 엄마들처럼 ‘부끄러움을 잊은 채 숭숭 구멍 난 사각 팬티 바람’으로 영화 초반부터 기선을 제압한다.
“형편의 문제가 아니랍니다. 내 것 하나 사느니 아이들, 남편 것 하나 더 사는 게 엄마들의 마음이거든요. 그래서 문득 보니 팬티에 구멍도 나있고 그런 거에요, 엄마는.”
영화 ‘거북이 달린다’는 그녀에게 20년 만에 스크린 복귀라는 배우로서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작품. 소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대신, 견미리는 대뜸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먼 훗날 성장한 아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줬다”고 영화에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말이다.
“실은 우리 아들이 단역으로 두 번 출연해요. 간단한 대사도 있었는데 그게…잘렸더라고요.(웃음) 조금은 실망하겠지만, 엄마도 처음엔 회당 출연료 5,000원 받고 ‘지나가는 처녀1’로 나왔다고 가르쳐야죠.”
허민녕 기자 justin@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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