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관 뚫린 틈으로 또다른 화성을 체험

  • 입력 2009년 6월 18일 02시 59분


■ 과거와 현대의 만남 ‘수원화성박물관’

외벽 오프닝 통해서 성곽풍경 감상

원통형 전망대는 화성 공심돈 본떠

유리 커튼월 로비공간 확트인 느낌

화성(華城) 안에서 바라본 화성.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수원화성박물관’은 전시물 안에 만들어진 전시공간이다. 건축면적 2382m²의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을 화성 사적지 한복판에 세웠다. 정약용이라는 희대의 인물이 물려준 과학적 건축유산을 ‘공간 속 공간’에 앉아 되새겨 살피게 한 것이다.

○ ‘틈’을 엿보는 또 다른 ‘틈’

이 박물관 설계를 주도한 이호락 정림건축 실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타이틀보다 당대 미학과 기술적 역량을 한데 모아 담은 결정체 안에 현대적 건물을 앉힌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박물관 개별 건물의 가치에 신경을 썼다면 사적의 존재감에 순응할지 말지 고민을 했겠죠. 하지만 화성이라는 건축물은 후배 건축가 입장에서 만용을 부릴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화성을 더 돋보이게 하면서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수원화성박물관이 여느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달리 곳곳에 널찍한 외벽 오프닝을 갖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관람객은 봉돈(烽墩)과 서장대(西將臺) 등의 상징적 구조물을 벽체 이곳저곳에 뚫어놓은 틈을 통해 조망할 수 있다. 전시한 사료를 들여다보던 시선을 문득 위로 돌렸을 때 방금 읽은 설명의 대상이 눈에 들어오도록 한 것이다. 사용자는 그런 시선을 통해 전시공간 밖에 위치한 오래된 전시물을 새롭게 경험한다.

관람객은 박물관에 이르는 길에서 구불구불한 성벽을 따라 걸으며 성가퀴(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성벽 위에 덧쌓은 낮은 담) 틈이나 총구로 성곽 시설들을 넘겨다본다. 박물관 오프닝을 통해 건너다보는 성곽 풍경은 그 경험을 한 겹 확장하는 시선인 셈이다.

○ 흔적을 이어낸 재료와 형태

사적의 오랜 흐름을 이어내고자 한 의도는 박물관 외관에도 뚜렷이 드러난다. 화성은 당시 중국에서 수입한 잿빛 전돌(흙을 구워 만든 얇은 돌)을 쌓아서 만든 건물이다. 수원화성박물관은 철근콘크리트와 철골로 건물 구조를 얽은 뒤 서울 종로구 인사동 길바닥 등에서 볼 수 있는 까만색 전벽돌로 외장을 감쌌다. 얼핏 화성의 현대적 미니어처 같은 느낌을 준다.

중앙에 위치한 원통형의 전망대는 화성 공심돈(空心墩)의 형태를 본떠 만들었다. 내부에는 실제 공심돈 안에 있는 나선형 ‘소라각 계단’을 체험할 수 있는 계단을 만들었다. 관람객은 이곳을 통해 화성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로 올라간다.

유리 커튼월로 만든 건물 전면의 로비 공간은 아래위를 개방하고 천창(天窓)을 둬 시원한 느낌을 살렸다. 외벽의 전벽돌은 유리 커튼월 뒤로 흘러들어 가면서 화성을 표상하는 또 다른 전시물이 된다.

상설전시장은 2층에 올리고 1층 로비는 무료 개방 공간으로 만들었다. 메인 홀을 중심으로 카페테리아, 상점, 자료 열람실을 배치했다. 건물 외부 전시시설과 함께 지역 주민의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하고자 한 의도다.

16일 오전 찾아간 수원화성박물관은 평일이어서인지 한산한 모습이었다. 내부에는 화성과 정조에 관한 유물 252건 740점이 있다. 건물의 축조정신, 계획과 시공 과정에 이어 세계의 유명 성곽과 화성을 비교한 내용도 담았다. 8일간의 화성행차 모형과 유물을 공개하는 ‘정조, 화성과 만나다’ 기획전이 끝나는 27일까지 개관 기념으로 무료 개방한다.

이 실장은 “땅과 유적이 간직하고 있는 의미에 부끄럽지 않은 건물을 만들 수 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염려를 놓을 수 없었다”며 “공심돈 전망대의 일반 출입이 제한되는 등 개관 뒤 설계 의도와 맞지 않는 부분이 몇 가지 눈에 띄지만 차차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원=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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