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처럼 직조된 자개 조각이 캔버스 위를 수놓는다. 붉은 바탕에 연두색 자개를, 검정 바탕에 분홍색 자개를 올리니 바탕색이 자개 위로 뽀얗게 비치면서 색감의 변화가 나타난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17∼23일 열리는 정현숙 대진대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의 개인전은 자개로 사각형이나 원형의 추상적, 반복적 패턴을 보여 주는 작품을 선보인다. 영문 미술전문지 에이스아트가 해외에서 활동이 활발한 작가에게 주는 에이스아트 그랑프리 수상 기념전이다.
정 씨는 2007년경 대진대 내에 있는 대진테크노파크의 자개 가구 공장에서 현대적인 자개 가구 디자인을 의뢰받으면서 자개를 회화의 소재로 ‘재발견’했다. 작업은 기계로 자개를 0.5∼1cm 두께로 가늘게 자른 뒤 핀셋으로 조각을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크기가 큰 작품은 꼬박 한 달이 걸린다. 전통 자개농의 원형이 그대로 보이는 작품은 아니지만 자개의 화사함과 은은함은 살아 있다. 자개로 만든 패턴 안에는 체코산 크리스털을 박아 화려한 멋과 함께 동서양의 조화를 추구했다.
정 씨는 이번 전시에서 사각형 패턴이 모여 원 모양을 만들어낸 100호 크기의 작품 네 점을 대표작으로 꼽았다. 나선형으로 이어 붙인 자개 조각이 앞으로 튀어나올 듯 입체적인 원을 만들어낸다. 각기 다른 바탕색을 깔아 변화를 줬다. 정 씨는 “자개를 활용해 우리의 전통을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작품 제목을 모두 ‘비포 앤 애프터’로 정했다”며 “여기서 원은 죽음과 삶, 과거와 현재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유산이나 생명의 변화를 상징하는 나비를 밑그림에 넣은 작품도 선보인다. 정 씨는 “우리 전통을 활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크릴로 칠한 푸른색과 녹색 등의 바탕색에 반가사유상과 석가탑, 조선 백자 등을 그려 넣고 그 위에 자개로 마름모꼴이나 직사각형의 패턴을 얹었다.
정 씨는 “외국 아트페어에서는 자개 소재가 좋은 평가를 받는데도 우리는 이를 소홀히 하거나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작품을 통해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