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생활’ 배우, 관객모독 그만!

  • 입력 2009년 6월 19일 02시 56분


오늘은 ‘맘마미아’ 도나역… 내일은 ‘시카고’ 벨마역…

최정원-옥주현-배해선 등
겹치기 연속 출연 등 강행군
배우몰입도-작품 質저하 우려
“스타 적고 공연 많아 불가피”

뮤지컬 배우 최정원 씨(40)는 20∼26일에는 ‘도나’로 산다. 그러다 28일에는 ‘벨마’로 살다가 7월 3∼22일 다시 도나로 돌아온다. 최 씨는 5∼14일에는 벨마로 살았다.

최 씨가 한 달간 도나와 벨마를 오가는 이유는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29일까지 공연하는 뮤지컬 ‘시카고’의 벨마 역과 서울 국립극장에서 20일 개막하는 ‘맘마미아’(7월 23일까지) 도나 역으로 출연하기 때문이다. 그는 두 작품의 공연장인 성남과 서울을 오가야 한다.

배해선 씨(35)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그는 20일까지 뮤지컬 ‘삼총사’에 밀라디 역으로 출연하는 데 이어 사흘 뒤인 23일부터 ‘시카고’의 록시하트로 무대에 오른다. 서범석 씨(39)는 3월 28∼31일 ‘노트르담 드 파리’의 신부 프롤로 역으로 선 뒤, 4월에는 ‘라디오 스타’ 앙코르 공연에서 매니저 박민수로 나오기도 했다.

옥주현 씨(29)는 현재 ‘시카고’에 출연하면서 틈틈이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연습에 참여하고 있다. 28일 뮤지컬 ‘시카고’의 마지막 무대에 출연한 뒤 7월 2일∼8월 30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출연하기 때문이다.

인기 뮤지컬 작품을 중심으로 스타급 배우들의 겹치기 혹은 연속 출연 실태가 이렇다. 2중∼4중 캐스팅 탓에 한 배우가 여러 공연을 동시에 뛰는 ‘메뚜기 출연’도 빚어지고 있다. 배우들의 몰입도나 컨디션이 관건인 뮤지컬에서 겹치기 출연 등은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뮤지컬 팬인 민소라 씨(28)는 “다른 작품에 동시에 출연하는 배우가 과연 이 공연에서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최고의 연기를 선보일지 의문이 든다”며 “이런 점에서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은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겹치기 출연 등이 빚어지는 이유는 뮤지컬 작품이 급증한 데 비해 노래 연기 춤의 역량을 인정받는 배우들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6, 7월에 ‘삼총사’ ‘맘마미아’ ‘시카고’ ‘돈주앙’ ‘스프링어웨이크닝’ ‘브로드웨이 42번가’ 등 인지도 높은 해외 라이선스 공연이 열리지만 주요 배역을 맡을 수 있는 배우층이 얇아 일부 스타들에게 몰리는 ‘쏠림 현상’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맘마미아’ ‘시카고’ 제작사인 신시컴퍼니는 “극중 화려한 쇼 스타인 40대 벨마 역을 소화할 배우를 찾기가 쉽지 않아 초연부터 벨마 역을 맡은 최정원 씨를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최 씨는 2007년부터 두 작품의 주연을 맡아 왔다.

일정 수준의 흥행을 기록한 작품들을 장기적인 계획 없이 앙코르 공연을 여는 것도 문제 중 하나. 앙코르 공연은 대관이 불규칙하게 결정되기 때문에 배우들의 일정과 엇박자를 빚게 된다. 뮤지컬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외국은 공연이 끝난 지 한참 뒤에 새로운 캐스팅과 무대, 각색을 거쳐 리바이벌하지만 국내는 브랜드 가치가 검증된 작품들을 단순 재공연하는 수준이어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스타급 배우 2∼4명을 동시에 캐스팅하는 관행도 뮤지컬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사례다. 이들의 이름값에 의존해 흥행을 보장받겠다는 관행인데 이런 중복 캐스팅으로 인해 스타들의 겹치기 출연에 무감각해졌다는 것이다. 뮤지컬 제작사인 쇼틱의 김종헌 대표는 “배우의 이름값에 좌우되는 국내 뮤지컬계의 문제를 보여주는 현상”이라며 “원 캐스팅으로 치열하게 연습해도 살아남기 힘든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출연 배우들도 장기적으로 손해가 크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서범석 씨는 “다양한 역할을 해보며 연기력을 키울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두 작품에 동시에 나오는 경우 몰입도가 떨어진다”며 “수입을 떠나 배우에게 잃는게 많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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