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은 뜨겁다. 밤은 차갑다. 벌거벗은 네 등은 차갑다…네 등에 묻힌 글자에서 싹이 돋고, 들꽃들이 피어났다. 밤은 뜨겁다. 꽃은 뜨겁다. 꽃의 향기는 시가 되어 손가락 끝에 만져진다. 네 등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영원히 새겨졌다. 별은 뜨겁다. 손가락도 뜨겁다.”(‘손가락이 뜨겁다’)
영원히 새겨진, 뜨거운 그 무엇이 시인의 시심(詩心)일까. 글자에서부터 싹이 돋고 꽃들이 피어나며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 시가 만들어내는 세계이기도 하다. 몸과 언어에 대한 관심을 시로 형상화해 온 채호기 시인이 7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을 펴냈다. 시적 언어를 통해 실재에 이르고자 하는 고민과 새로운 모험들이 담겨 있다.
이번 시집의 특징은 ‘돌’이란 소재를 여러 작품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돌이란 사물을 ‘침묵’ 혹은 ‘언어의 몸’으로 재발견한다.
“까맣고 노랗고 희고 푸른 모래들은 얼마나/긴 세월과 수많은 비바람을 압축하여/저 거대한 말의 덩어리가 되었나/반짝이다 사라지고 흐려지다 나타나는/먼지들, 입김들은 허공중에 떠도는 얼마나/강한 사랑의 접착력과 서로 교배하는 음절들의 악력으로/하나의 우뚝 선 음악이 되었나”(‘돌의 메아리-마이산’)
“페이지에 펼쳐진 글자들이 알약처럼 가지런하다”(‘책을 연다’) “하얀 가운과 흰 병동의 백지에 갇힌 글자들은 모두 정신병 환자”(‘글자들’)처럼 글자에 관한 여러 시편 역시 언어와 그것이 만들어 내는 의미에 대한 시인의 사유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들은 시인이 우연히 등산을 가던 길에 검은 돌이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은 뒤 착상하게 됐다고 한다. 그 의미를 해독하려다 산행을 망쳐버리고 말았다는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그 사건은 내가 언어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하나의 계기였다”고 밝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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