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ESIGN]가로 8.5×세로 5.4cm 예술품

  • 입력 2009년 6월 22일 02시 56분


‘가로 85mm, 세로 54mm의 미학.’

신용카드가 단순한 ‘플라스틱 머니’를 넘어 지갑 속의 예술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작품이 새겨진 카드부터 둥근 모양의 카드, 향기 나는 카드, 내가 직접 디자인한 나만의 카드까지 혁신적 디자인의 카드들이 쏟아지고 있다.

포인트 제공, 할인혜택 등 서비스만으로 다른 회사 카드와 차별화하기 어려워진 카드회사들은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 쪽으로 눈을 돌렸다. 감성 마케팅, 디자인경영이 기업들의 화두가 되면서 카드사도 디자인을 통해 브랜드 차별화와 경쟁력 강화에 나선 것이다. KB국민은행 카드마케팅부의 김용호 팀장은 “이제 소비자들이 지갑에 꽂힌 여러 카드 중에서 디자인이 뛰어난 카드를 고르는 시대”라며 “카드뿐만 아니라 명세서, 안내장 등 카드와 관련된 모든 것에 일관된 디자인을 접목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 세계적 디자이너와 손잡고 디자인 차별화

‘레스 이즈 모어(Less is more).’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현대카드의 디자인 철학이다. 2003년 ‘현대카드M’을 시작으로 잇달아 선보인 알파벳 카드에는 이런 철학이 반영됐다. 단색 바탕에 강렬한 색상의 알파벳 하나만 새겨 넣은 디자인이 눈길을 끌면서 현대카드는 5년 만에 시장 점유율을 7배로 확대했다. 2005년 업계 최초로 내놓은 VVIP카드 ‘더 블랙’은 세계적 디자이너인 카림 라시드가 참여했으며, 최근에는 디자이너 레옹 스탁이 뉴 알파벳 카드 시리즈의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했다.

KB카드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조화된 ‘포스트 클래식(Post classic)’을 디자인 전략으로 세웠다. 역사를 중시하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KB그룹의 가치를 표현하고자 한 것. 이를 반영해 KB카드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과 협력해 천연 자개를 덧씌운 카드, 매화 모란 나비 등의 전통 문양이 들어간 카드 등을 선보이고 있다. 비씨카드는 최근 영국의 유명 그래픽 디자이너 시 스콧과 협력해 대표 카드 8종류의 디자인을 모두 바꿨다. 미니멀리즘이 특징인 스콧의 일러스트로 디자인을 통일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전달하겠다는 의도다.

○ 고정관념 깨고 오감(五感)을 자극하다

요즘 새로 선보인 카드들의 디자인은 고정 관념을 과감히 깬 게 특징이다. 기존 카드의 절반 정도 크기인 현대카드 ‘미니M’과 신한카드의 ‘아름다운카드 미니’ 등은 카드를 지갑에 넣고 다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소비자들은 미니카드를 키홀더 휴대전화 목걸이 등에 끼우고 다니며 패션 아이템으로 활용한다.

직사각형에서 탈피한 프리폼(free form)카드도 눈길을 끈다. 신한카드는 2005년부터 매년 십이지에 맞춰 동물 모양의 기프트카드를 출시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소 모양의 카드를 내놨다. 현대카드도 자동차 모양, 둥근 모양의 카드를 선보인 적이 있다. 시각적으로만 예쁜 카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촉각 후각 청각까지 공략하는 혁신적 디자인의 카드도 개발되고 있다. KB카드는 지난해 천연 가죽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레더 스타일 카드를 내놨다. 카드 표면에 특수 안료를 입혀 타조, 악어가죽의 입체 무늬를 촉각으로도 느낄 수 있게 했다.

비씨카드는 국내 최초로 발광(發光) 카드를 개발했다. ‘우리은행V포인트카드’에 이 기술이 적용됐다. 카드 내부에 발광다이오드(LED)가 삽입돼 카드를 단말기에 갖다대면 빛이 난다. 비씨카드는 향기가 나는 ‘퍼퓸 카드’도 곧 상품화할 계획이다. 사용자가 카드 표면에 향수를 뿌리면 한 달 이상 향기가 유지되는 카드다. 카드 안에 사운드 모듈을 넣어 카드를 단말기에 갖다대면 소리가 나는 ‘사운드 카드’도 개발하고 있다. 비씨카드 지불결제연구소 김명곤 차장은 “사용자가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쪽으로 신용카드의 디자인이 진화하고 있다”며 “여기에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더해 소비자의 기억이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나만의 카드…셀프 디자인

삼성카드는 소비자가 직접 카드 이미지를 선택해 디자인할 수 있는 ‘셀프 디자인 카드’를 선보이고 있다. 가족사진이나 본인의 명함, 생일이나 기념일이 표시된 달력 등을 담은 기발한 아이디어의 카드 디자인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20, 30대는 주로 본인의 사진을 넣어 세상에서 하나뿐인 카드를 만들고 40, 50대는 동창회, 동호회 등의 단체사진을 넣어 단체로 발급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용호 팀장은 “각 분야에서 개인을 위한 맞춤 서비스가 보편화되는 것처럼 신용카드에도 개인을 위한 맞춤 디자인이 늘고 있다”며 “독창적인 디자인의 카드를 대량생산하는 대신 고객이 원하는 대로 재질 색상 모양 등을 달리한 ‘나만의 카드’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상상할 수 없는 카드 기대하세요”▼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현대카드 본사에서 만난 이 회사 오준식 디자인 실장(40)의 책상에는 네 장의 보라색 신용카드가 놓여 있었다. 같은 보라색이지만 색상의 밀도와 강도는 조금씩 달랐다. 사무실 벽에도 여러 장의 보라색 카드가 붙어 있었다. 그는 “보라색은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상품인데 기존에 나온 현대카드의 퍼플카드는 색이 너무 일반적이다”라며 “퍼플카드에 맞는 새로운 색을 5개월 정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많은 느낌을 전달하는 단 하나의 색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카드는 미니카드, 투명카드 등 기존 카드회사들이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디자인으로 고객의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혁신적인 디자인의 이면에는 카드의 작은 색감 차이, 1mm의 두께 차이, 표면의 미세한 촉감 차이에도 주목하는 현대카드 디자이너들의 노력이 숨겨져 있다.

오 실장은 카드 디자인을 바꾸는 작업뿐 아니라 현대카드가 소비자에게 ‘금융상품’이 아닌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전달하는 회사로 거듭나는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국 현대카드 파이낸스숍의 서비스와 인테리어를 고객 친화적으로 바꾸고, 고객이 이용할 새로운 문화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어떤 종류의 문화공간인지 묻자 그는 “미리 알고 오면 재미가 없잖아요”라며 웃었다.

오 실장은 “‘카드회사가 이런 것도 만들어?’라는 감탄이 나올 만한 새로운 카드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의 카드와 형태나 서비스가 전혀 다른, ‘상상할 수 없고 여자들이 과시하고 싶어하는’ 상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역시 어떤 카드인지 묻자 그는 “애플의 아이맥이 미리 찔끔찔끔 공개됐다면 신선했을까요”라고 반문하며 말을 아꼈다. 그는 이러한 모든 작업을 현대카드의 아이덴티티를 ‘3차원’으로 바꾸는, 즉 고객들이 함께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회사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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