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ESIGN]고객 관심을 이름에 담았다

  • 입력 2009년 6월 22일 02시 56분


‘Design loves Depression!’(디자인은 불황을 사랑한다!)

불황기에 상품 디자인이 발전하는 것은 유독 제조업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해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의 ‘주범’격인 금융업에서도 ‘디자인 경영’이라는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최근 금융권도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디자인 경영의 개념에 조금씩 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금융상품은 겉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상품이름부터 회사의 이미지나 경영철학을 드러낼 수 있는 지면 영상에 디자인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 톡톡 튀는 금융상품 이름, 고객 눈길 끌어

올 초 증권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금융 상품명을 갖고 업계 간의 갈등이 불거졌다.

지난해 경제위기로 금융 상품의 판매가 급감하자 삼성증권은 올 2월에 주가연계증권(ELS)에 ‘슈퍼스텝다운’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놨다. 당시 이 상품은 11개 형태의 상품에 900억 원의 돈이 몰렸을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이례적으로 앙코르 상품까지 선보였다. 이후 삼성증권은 ‘김연아 효과’를 염두에 두고 ‘삼성 트리플점프 ELS’ 등의 상품을 잇달아 선보였다.

이런 움직임은 다른 증권사들에게도 전해져 ‘듀얼찬스 스텝다운 ELS’, ‘부자아빠 트랜스포머 ELS’ 등 기존의 딱딱한 이름을 탈피하면서 고객들의 관심을 끌어내려는 분위기가 업계 전반에 퍼졌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재미있는 ELS 이름이 나오는 것은 상품이 다양해지면서 상품구조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필요한 측면도 있지만 상품명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우리투자증권은 월말에 주식을 사고 월초에 파는 전략으로 운용하는 랩어카운트 상품에 ‘히트앤드런’이라는 상품명을 붙었다. 5000만 원 이상 맡기면 매달 이자 형식의 돈이 들어오는 상품에 ‘다달이보너스’라는 이름을 달아 고객의 호기심을 끌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이 내놓은 ‘뱅키스’라는 상품명도 개인투자자들에게 인상적이었다. 뱅키스란 은행에서 개설하는 주식거래계좌 서비스의 브랜드로 은행을 뜻하는 뱅크(Bank)와 한국투자증권의 영문 이니셜인 키스(KIS)를 합성해 만든 이름이다.

○ 광고에도 디자인 개념 도입

증권사들은 지면과 영상의 광고에도 다양한 디자인 개념이 스며들도록 시도하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지면 광고에 오렌지색과 군청색 두 가지만을 사용하면서 다른 색의 사용은 최대한 배제한다. 광고 문구 역시 이미지를 배제하고 고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만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미래에셋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광고모델도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대신 무명 모델들을 기용해 금융회사로서의 보수적이고 원칙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가 최근 만든 영상광고는 중국의 푸둥 경제자유구역에서 젊은 여성이 긴 트랙을 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트랙에는 2010, 2011, 2012년 등 연도가 적혀 있다. 미래에셋이 추구하는 ‘장기투자’를 강조하기 위해 이런 장치를 도입한 것이다.

최근 삼성증권도 ‘Create it with you'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내걸고 본격적으로 디자인 경영을 선언했다. 원 모형 차트(Chart)의 4분의 1 정도를 형상화한 브랜드 이미지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으로 고객별로 최적의 자산 포트폴리오와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의미다. 또 이 모형을 회사 브랜드의 디자인 테마로 선정하고 모든 광고물과 직원 유니폼 및 사무실 인테리어도 이를 응용한 디자인을 적용할 예정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장인 시리즈’란 독특한 콘셉트로 금융전문가로서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 최기영 선생, 112호 주철장 원광식 선생, 115호 염색장 정관채 선생 등을 내세워 고객의 자산 경영인으로서 엄격한 원칙과 기준을 고집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카페 닮아가는 증권사▼

미국 움프콰 은행은 소규모의 지방 은행이다. 2003년 움프콰 은행이 실험적으로 연 지점에는 일주일 만에 100만 달러, 9개월 동안 5000만 달러의 예금이 몰렸다. 움프콰 은행은 이 지점에서 어떤 실험을 했을까. 이 은행은 새 지점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호텔이나 갤러리처럼 꾸며 고객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 지점 안에는 언제나 커피 향기가 풍겼고 복고풍의 탁상 램프는 은은한 조명을 발했다. 고객들이 편안하게 상담하고 천천히 금융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게 성공의 요인이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움프콰식 실험이 국내 증권사 지점에도 확산되고 있다. 직원들이 일렬로 앉아 고객을 맞이하는 천편일률적 객장 디자인에서 탈피해 카페나 갤러리를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도입하는 지점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하나대투증권은 지난해 3월 서울 강남지역의 고액자산가를 겨냥해 강남구에 청담금융센터를 열었다. 이 센터는 파격적인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기존 증권사 영업점 객장의 틀을 완전히 깨 화제를 모았다. 이 센터의 객장 한가운데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휴식공간이 있다. 게임룸에는 플레이스테이션, 위(Wii) 등 게임기가 설치돼 있고, 넓은 와인바는 직원과 고객들의 모임 장소로 활용된다. 하나대투증권 측은 “고객과 직원이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편안하고 즐거운 공간을 꾸미는 걸 목표로 했다”고 말했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10월 여성을 위한 금융서비스 공간인 ‘부띠크모나코 지점’을 서울 강남구에 열었다. 이 지점은 여성의 취향을 고려한 독특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눈길을 끌었다. 지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앨리시아 라운지’에는 홍단풍나무와 현무암이 짜임새 있게 배치돼 있고 지점 곳곳에서 허브향이 풍겨 제주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성을 위한 금융 공간이라는 취지에 맞게 부띠크모나코 지점은 여성 고객들의 모임 장소나 문화장소로 자주 활용된다. 미림여고, 경기여고의 동창회와 송년회가 이미 이곳에서 열렸고 와인 커피 꽃꽂이강좌 등 여성 고객들이 여가시간에 참여할 만한 행사도 열리고 있다. 차를 마시러 들렀던 고객들이 금융상품에 가입하기도 하고, 인근 아파트 주부들의 모임이 자주 열리면서 ‘입소문 마케팅’ 효과도 누리고 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