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의 귀환.’ 아트(Art) 가전을 표방하는 LG전자 디자인의 새 트렌드를 요약하면 이렇다. ‘백색가전’이라는 용어를 한 단어처럼 만들어버린 화이트 컬러가 돌아왔고,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맵시가 전면에 부각됐다. 그렇다고 밋밋한 것은 사절이다. 스스로 ‘아트’라는 단어를 붙인 것처럼 집 안을 한층 매력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고민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엿보인다.
○ LG전자 #1…화이트와 레드, 단순하고 깔끔한 맵시
가전 디자인이 담백해졌다. 화려한 색과 문양을 벗고 단순함으로 무장했다. 특히 화이트 컬러의 복귀가 인상적이다. 과거 흰색이 주던 ‘싸구려’ 느낌은 기억에서 깨끗하게 지울 필요가 있다. 올해 선보인 LG전자 휘센 에어컨의 신제품들은 ‘포에버 와인 드레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모델이 화이트와 레드 두 가지 색깔이다. 이는 가전제품이 집안 인테리어 포인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화려하고 강렬한 디자인을 원하는 고객들도 있지만, 복잡하고 튀는 디자인을 기피하는 소비자들도 상당수 있음을 간파한 전략이다.
LG전자는 고급스러운 화이트를 구현하기 위해 고급 가구나 인테리어에만 적용되는 소재를 사용했다. 유리는 특수표면 처리를 통해 투명도를 최대한 높였다. ‘뷰티 화이트’는 전면 패널에 그러데이션(gradation·점층) 효과를 줌으로써 깊은 느낌을 꾀하는 동시에 심플한 디자인을 강조하기 위해 디스플레이 패널도 에어컨 작동 시에만 켜지도록 설계했다.
LG전자는 그동안 업소용 이미지 때문에 가전제품으로서는 선호도가 낮았던 스테인리스 제품을 과감하게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이 소재를 사용한 양문형 및 김치냉장고와 드럼세탁기·건조기 세트는 지난해부터 판매 중이다.
‘샤인’ 디오스 냉장고 디자인은 ‘포토에칭(photo etching)’이라 불리는 초정밀가공 기술 덕분에 가능했다. 반도체 등 첨단 정밀제품 제작에만 사용되던 이 기술이 냉장고 디자인에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꽃의 화가’인 서양화가 하상림 작가의 꽃 패턴은 포토에칭을 통해 20∼3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수준의 섬세한 표현까지도 살아날 수 있었다. 여기에 ‘특수접합 공법’으로 전면 강화유리를 덧씌움으로써 고급스러운 방점을 찍었다.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의 배세환 슈퍼디자이너는 “더욱 새롭고 화려한 디자인을 원하는 고객은 물론 깨끗하고 절제된 디자인을 원하는 고객까지 만족시키기 위해 색의 기본을 강조한 디자인을 강화했다”며 “포토에칭 등의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LG전자 #2…예술가 6인의 작품이 생명력 불어넣어
2006년 ‘디자인경영’을 선포한 LG전자는 생활가전 제품의 디자인에 예술작가를 활발하게 참여시키고 있다. 지난해 3월 서울 양천구 목동 현대백화점 갤러리H에서 열린 ‘휘센이 만난 6인의 아티스트전’이 대표적 사례다. 이상민(유리조각가), 김지아나(조형예술가), 하상림, 함연주(조형예술가), 수지 크라머(색채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 등이 그들. 특히 하상림 작가의 다섯 번째 꽃 패턴, 함연주 작가의 두 번째 패턴은 휘센 에어컨과 디오스 냉장고 디자인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데이션을 적용한 배인숙 작가 패턴 또한 힘을 실었다. 이들 예술작품을 적용한 LG전자 ‘아트플라워 가전 시리즈’는 올 4월 누적판매량 100만 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섹션 디자인=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가전은 종합예술
해외에서 판매되는 제품들 역시 마찬가지. LG전자는 2006년 영국의 세계적 홈인테리어 디자이너인 트리샤 길드가 디자인한 ‘스팀 세탁기 스페셜 에디션’ 4개 모델을 영국시장에 선보였다. 트리샤 길드는 1970년 ‘디자이너 길드’라는 회사를 설립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색상과 패턴을 사용한 벽지, 침구, 가구, 카펫 등을 디자인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랄프로렌, 캐스 키스톤, 존 루이스 등 유명 홈인테리어 브랜드에 디자인을 제공하고 있다. 세탁기에 이러한 세계적 디자이너가 참여한 것은 시도 자체만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유럽 현지 예술작가들의 작품을 제품 전면에 부착한 액자형 에어컨 ‘아트 쿨(art cool)’ 역시 LG전자의 디자인 전략을 잘 드러내 준다.
2006년부터 시작한 오스트리아의 크리스털 공예 전문회사 스와로브스키와의 제휴도 LG전자 가전제품의 디자인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최근까지 LG전자 가전에 쓰인 스와로브스키 제품만 3억 개가 넘는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LG전자 #3… 트롬 드럼세탁기-‘4도어 냉장고’의 편의성
LG전자가 생산하는 17kg 용량의 트롬 드럼세탁기는 가로 길이가 43cm에 이르는 ‘사각형 도어’를 적용했다. 많은 양의 세탁물을 편하게 넣고 뺄 수 있도록 고안된 것. 지난해 8월 미국 시장에서 선보인 뒤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어 올해부터는 이 디자인을 확대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올 초에는 미국가전협회(CEA)와 미국산업디자이너학회(IDSA)로부터 생활가전 부문 ‘CES 최고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냉장고 부문에서는 ‘4도어 냉장고’가 눈에 띈다. 위쪽에 양문형 냉장실이 있고, 아래쪽에는 2개의 서랍으로 된 냉동실로 구성된 제품. 버튼을 누르거나 냉동실 서랍을 살짝 밀면 자동으로 열고 닫히는 기능을 넣어 편의성을 배가시켰고, 개폐 중 장애물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멈추도록 하는 ‘센스’도 가미했다. 올해 처음 적용한 수평 손잡이 ‘웨이브 핸들’도 자연스러운 물결 곡선으로 시각적 효과를 높이면서 불필요한 동작과 힘을 줄이는 효과를 노린 디자인이다. 또한 손잡이의 위치를 옮기면서 홈바의 크기도 가로 폭을 기존 307mm에서 업계 최대 수준인 325mm까지 넓혀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을 구체화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디자인 먼저, 기술은 나중▼
○대우일렉 ‘클라쎄 드럼 업’ 세탁기의 성공 비결
드럼 업 세탁기의 성공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디자인은 그중에서도 으뜸이다. 허리통증으로 고생하던 아내가 좁은 다용도실에서 세탁기 드럼통 안까지 머리를 집어넣어 빨래를 꺼내는 모습을 본 한 연구원의 아이디어가 드럼 업 탄생의 첫 걸음이었다.
‘세탁기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깊이 숙이지 않고도 세탁물을 꺼낼 수는 없을까.’
대우일렉은 곧바로 드럼 업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다. 드럼통을 끌어올리고 경사드럼으로 주부의 허리를 펴게 하자라는 기본적인 콘셉트에 모두 동의했지만 개발이 쉽지만은 않았다. 무게중심이 올라간 만큼 소음과 진동이 심해졌기 때문. 만들다 버린 시제품만 수억 원어치였다. 희망의 빛을 찾은 것은 자동차설계연구소와 고등기술연구원에서였다. 여기서 연구 자문을 해 결국 드럼통을 11cm 끌어올리고 드럼통에도 경사드럼을 적용했다. 손잡이도 15도 정도 끌어올렸다.
반응은 뜨거웠다. 기존 드럼 도어를 열고 닫을 때는 허리를 30도 이상 숙여야 했지만, 거의 서 있는 자세로도 빨래를 꺼낼 수 있게 됐다. 경사드럼 채용으로 드럼통 내부공간을 볼 수 있는 시각효과가 기존 제품 대비 3배로 높아졌다.
드럼 업 Ⅱ는 기존의 인체공학적 설계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조작부에 발광다이오드(LED) 패널을 채용했다. 문에는 어린이 안전 잠금장치 기능을 추가하는 등 세심함을 더했다.
대우일렉 디자인연구소 박성철 세탁기 디자인팀장은 “과거 디자인 개념은 기술 개발이 완료된 뒤 포장지를 싸는 것과 같았다면 지금은 디자인 콘셉트에 맞는 기술을 개발하는 양상”이라며 “앞으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IT`S DESIGN’ 특집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