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노년을 위한 ‘5禁’이란
투덜대지 말고
아무때나 노하지 말고
풀 죽는 소리를 삼가고
老貪을 부리지 말고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것
국문학자인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77)는 이순(耳順)이 되던 1991년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경남 고성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로부터 18년 동안 바닷가와 숲길을 산책하고,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일상을 반복했다. 김 교수는 23일 통화에서 “그런 생활을 해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몸과 정신이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최근 ‘노년의 즐거움’(비아북)을 펴냈다.
책은 김 교수가 설파하는 ‘노년 예찬론’이다. 그는 먼저 위인들의 초상을 제시한다. 퇴계 이황, 톨스토이, 아인슈타인, 슈바이처…. 그림과 사진 속의 위인들은 모두 노안(老顔)이다. 김 교수는 “이들 대인의 풍모를 굳이 노년의 초상화에 담으려 했을까”라고 묻는다. 그러고는 “노년의 초상이라야만 완벽과 성숙이 표현될 수 있다. 노년의 초상에는 하나같이 부드러움과 우아함, 엄숙함과 숙연함, 단아함과 다소곳함이 담겨 있다. 중장년기만 해도 아직 무엇인가 미성(未成)하고 미숙하다”고 해석했다.
더 나아가 김 교수는 ‘노(老)’라는 글자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으며 “노숙(老熟), 노련(老鍊), 노수(老手·노련하고 익숙한 솜씨) 같은 낱말에서 ‘노(老)’는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바라보는 노년은 ‘청춘을 뛰어넘는 가능성의 시기’이며 ‘황혼처럼 사무치게 곱고 야무지고 황홀한 시기’다.
노년은 삶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긴 시간이므로 여생(餘生)을 ‘살다 남은 인생’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오히려 여생의 ‘여’는 풍요(豊饒)의 ‘요’와 뜻이 통하는 넉넉하고 충만한 글자이며 여생은 ‘여유작작하고 여유만만한 인생’으로 해석돼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김 교수는 책에서 행복한 노년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5금(禁)’으로 투덜대지 말 것, 아무 때나 노하지 말 것, 기가 죽고 풀이 죽는 소리를 삼갈 것, 노탐(老貪·나이 든 사람의 욕심)을 부리지 말 것, 과거를 돌아보지 말 것을 제시했다.
반대로 존경받는 노년을 보내기 위해선 한 가정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장로(長老)가 되도록 애써야 한다고 충고했다. 단, 사회에 개입할 때는 먼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자신의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판단이 정확한지를 스스로 따져봐야 합니다. 그런 뒤 자신이 서면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하거나 개입을 하되 삼가서 해야 합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우리 옛 어른들이 했듯이 사랑채에서 책상다리 하고 앉아 묵상을 하는 게 최선입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