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정신, 오늘의 품격을 묻다

  • 입력 2009년 6월 24일 02시 59분


《퇴계 이황은 27세 때 치른 향시에서 진사시 1등을 한다.

이 시험에서 제출한 것으로 보이는 답안지에는 영재 양성론이 담겨 있다.

퇴계는 여러 제자를 키워 낸 공자의 예를 들며 사람의 기질이 한쪽에 치우쳐 있더라도 장점을 살리면 인재로 육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재 양성과 경전 해석으로 나눠진 답안에서 퇴계는 각각 ‘二下’ ‘三上’의 점수를 받았다.》

국립민속박물관, 경북지역 선비의 삶 보여주는 특별전

퇴계 이황 향시 답안지 눈길
현실정치 참여 ‘만인소’ 공개
임진왜란 전사 김성일 편지도

조선시대 경북지역 선비들의 삶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국립민속박물관과 경상북도는 24일∼8월 3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선비, 그 이상과 실천’ 특별전을 마련한다. 안동 김씨, 의성 김씨 등 경북지역 문중 21곳이 대대로 전해져오던 유물을 내놨다. 전시물은 퇴계의 향시 답안지와 이현보의 ‘은대계회도’ 등 보물 6점을 포함해 200여 점이다.

퇴계는 경북 안동의 정자인 백운정(白雲亭)에 친필 현판 ‘조양문(朝陽門)’과 ‘이요문(二樂門)’을 남겼다. 시경의 ‘봉명조양(鳳鳴朝陽·어진 인재가 때를 만나 일어난다)’과 논어의 ‘요산요수(樂山樂水)’에서 따왔다. 농암 이현보가 승정원 동료들과 가진 모임을 그린 ‘은대계회도(보물 1202호)’에는 김안로의 시와 참석자들의 이름 관직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문인들이 자연 속에서 학문을 닦는 모임을 부채 위에 그린 김홍도의 ‘서원아집도’도 선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의 위철 학예연구사는 “경북 지역의 선비들은 산악으로 둘러싸인 지형의 영향을 받아 초야에서 자연과 함께 학문을 닦는 것을 이상적인 삶으로 여겼다”며 “관직을 거부하고 도산서원을 건립해 후학을 키웠던 퇴계의 삶은 당대 선비들의 삶을 대변한다”고 말했다.

‘나는 산음(山陰) 고을에 와서 몸은 무사히 있으나, 봄이 이르르면 도적이 대항할 것이니 어찌할 줄 모르겠네. (중략) 감사라 하여도 음식을 가까스로 먹고 다니니 아무것도 보내지 못하오.’(학봉 김성일의 간찰)

학봉이 임진왜란 중 진주성에서 아내와 자식들에게 언문으로 써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학봉은 1592년 12월 24일에 이 서찰을 보낸 뒤 4개월 만에 왜적과 싸우다 전사해 이 편지는 가족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됐다.

김부필 등이 쓴 다른 간찰에서는 당대 선비들의 학문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아직 삼소(제3시험장)의 방은 보지 못했는데, …제 조카들 또한 어떠한가? 염려되고 염려된다네’(1576년 김부필이 조목 등에게 쓴 편지)라고 말하며 과거의 결과를 걱정하는가 하면, ‘우리 영남은 근래에 선배들이 영락하여 유학이 점점 고립되어 가니’(1748년 권상일이 김낙행에게 쓴 편지)라며 영남 유학의 고립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에 함께 선보이는 만인소는 조선시대 유생들의 정치참여방식 중 하나로 ‘1만 명이 함께 올리는 상소’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 나온 7개 만인소 중 5개가 경상도에서 나왔다. 전시에서는 조선 중종 때 유학자 충재 권벌을 문묘에 올리고 제사를 지내달라고 요청하는 ‘충재승무청원만인소’를 볼 수 있다. 충재는 경상도 출신이었지만 만인소는 경기와 충청 등 다른 지방의 유생들이 올렸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에 반대하는 만인소를 작성하는 과정을 기록한 정직우의 ‘소행일기’도 전시된다.

의성 김씨 학봉종택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제기, 학봉의 제사 때 사용하려고 만든 병풍형 족자를 비롯해 인현왕후가 폐출되어 친가에 머무는 동안 창안한 놀이도구 ‘규문수지여행지도’, 여성들이 보도록 한글로 족보와 기일을 적은 ‘의성 김씨 한글세계’ 등도 함께 선보인다. 조선시대 4대 명필 중 한 명이었던 김구가 충재를 위해 쓴 ‘김구진묵’(보물 902-1호), 미수 허목이 스스로 개발한 미수체로 쓴 ‘정암서첩’ 등 당대 유학자들의 친필과 선비들이 사용하던 찬합과 목침, 책궤와 서안 등도 전시된다. 문의 02-3704-3153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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