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은 6월 11일 1면에 ‘22년 만에 터진 민주주의 요구’라는 제목으로 ‘6·10민주회복범국민대회’ 소식을 다뤘다. 사설도 ‘6·10항쟁 22주년에 다시 부르는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군사 독재정권의 폭압 강권정치에 맞서 싸웠던 22년 전 6월의 데자뷔로 다가 왔다”며 “22년 전 6·10과 오늘의 6·10은 시공을 뛰어넘어 다시 만났다”고 했다. MBC도 6월 10일 ‘뉴스데스크’에서 “22년이나 지난 6월 항쟁 기념일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또 광장에 모여든 걸까요. 역사에서 배워야만 한다는 교훈이 새삼 각별하게 느껴지는 밤입니다”라고 했다. KBS도 이날 “22년 전 촉발됐던 6·10민주항쟁의 뜻을 기리기 위해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수천 명이 부산 중심가에 모여 목숨을 바쳐 지켜온 민주주의를 이명박 정부가 후퇴시키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고 전했다. 이들 매체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보냈지만 정작 22년 전에는 6·10항쟁이 불법 시위이며 좌경 급진세력의 선동이라고 보도했다. 6·10항쟁의 불씨가 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4·13호헌조치는 ‘평화적 정부 이양을 위한 결단’으로, 6월 10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대통령 후보 선출은 ‘헌정 40년사의 경사’로, 6·29선언은 ‘민족사에 길이 빛날 새 지평’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1987년 4·13호헌조치 이후 6·29선언까지 당시 경향, KBS, MBC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민의의 함성보다 정권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향 등이 최근 6·10범국민대회와 관련해 민주주의의 대변자를 자임하는 것은 지난 일을 모른 체하는 행태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겨레는 당시 창간 전이었다. 》
‘좌경시리즈’ 연재하며 야권 맹공
반면 개헌 논의를 이어가려는 야당의 움직임은 비판했다. 4월 24일부터 6회 이어진 시리즈 ‘두 얼굴 야당인’에선 ‘사명감보다 돈을 앞세우고 계보 정치의 구조적 비리, 저질화로 자정능력을 잃었다’ ‘대안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 ‘양김(兩金·김영삼 김대중)이 곧 당’ 등으로 비난했다. 이 시리즈는 야당 살림이 어렵다고 하면서도 호텔서 수천만 원대 도박판을 벌였다는 소문이 돈다는 기사도 실었다.
5월 1일 창당한 통일민주당 정강에서 “정치 체제와 이념을 초월해 통일을 추진한다”는 표현을 민정당이 “국기를 흔드는 행위”라고 하자, ‘야권 맴도는 좌경’ 시리즈(5월 16∼18일)를 연재했다. 여기서는 좌경 세력이 당을 전위대로 내세워 체제전복을 부추기고 이념 체계의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고 비난했다.
6월 3일 민정당이 노태우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추천하자 4·13 때와 마찬가지로 ‘단임실천을 위한 거보’라고 했으며 6월 10일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선출되자 사설에서 ‘헌정 40년사 초유의 경사’라고 했다.
그러나 6·10대회에 대해선 ‘헌정 파괴 저의가 있다’라는 정부 측 주장(6월 8일 1면 톱)과 “대회 주체인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체제전복과 민중혁명을 기도하는 세력으로 국사·전과범들이 좌경폭력을 교사하고 있으며 반체제를 넘어 월남식 혁명을 획책한다”(6월 8일 3면 톱)는 정부의 분석을 옮겼다. 6월 9일엔 ‘본궤도에 오른 평화적 정부이양-헌정 새 기원’ 시리즈 기사에서 “정쟁은 국민 짐만 늘린다”며 “될 대로 되라는 무책임한 사고 씻는 것이 정치발전을 부른다”고 전했다.
6월 10일 이후 시위에 대해선 정부의 엄단 혹은 원천봉쇄 방침 기사를 시위 현장보다 비중있게 다뤘다.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직선 개헌을 수용하는 6·29선언을 발표하자 ‘헌정사에 큰 획 긋다’라는 사설을 실었고 11면(사회면) 톱으로 ‘구국충정에 박수와 환호’ ‘민족사에 길이 빛날 새 지평’이라고 표현했다. 30일에는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이 연상된다”는 기사도 실었고 사회면 기사에선 6·29선언 뒤의 대학가 풍경을 전하며 “이것이 한국판 민주장전이라며 환호했다”며 “과격한 눈빛 대신 낭만의 숨결이 충만했다”고 전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6·10대회는 선량한 군중 선동”
6·10대회를 앞둔 6월 8일엔 6·10대회에 헌정 파괴 저의가 보여 원천 봉쇄하고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정권을 타도하려는 급진 좌경논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정부의 분석을 내보낸 뒤 6·10대회가 선량한 군중을 선동해 극심한 사회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6월 10일에는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후보의 손을 번쩍 들어주는 헌정 40년 만에 처음 보는 극적인 장면이 이뤄졌다”며 10여 분간 현장을 전했다. 이어 취재 기자가 “평화적 정부 이양의 전통을 세우는 게 민주 정치 발전의 결정적 전기가 될 것이라는 전두환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현실화되는 순간”이라며 “헌정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민정당 후보 선출 뉴스는 모두 25분에 걸쳐 방영됐다. 그러나 이날 6·10대회에 대해선 곳곳에서 산발적 시위를 벌였다며 4분 남짓 보도했다.
KBS는 6·10대회 이후 시위의 폭력성을 부각하고 시위 엄단을 주장하는 정부 당국자의 발표를 자주 다뤘다. “6·10불법집회가 방화 파괴 구타로 과격한 폭력난동을 자행했다”(11일 치안본부장) “급진 과격분자의 망동이 개탄스럽다. 일부 야당이 장외 폭력을 책동하면 강력히 대응하겠다”(12일 문공부 장관), “(6·26대행진은) 불법이며 폭력과 난동으로부터 국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시위자를 엄단하겠다”(25일 치안본부장), “급진 좌경 세력이 폭력행위를 통해 체제전복을 선동해 국가발전을 퇴보시키고 올림픽마저 막대한 영향을 초래한다”(25일 문공부 장관) 등을 보도했다.
정국 경색의 책임을 야권에 돌리는 보도도 잇따랐다. 6월 11일에는 “민정당이 대화 정국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13일에는 “정부 당국의 대응조처 발동은 야권과 시위 학생들에게 달려 있다”고 했으며, 18일에는 “개헌 문제를 합리적으로 타결하려면 야권의 진지한 자세와 장외 투쟁 중단 등 시국 수습에 부합되는 여건 조성이 중요하다”면서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개헌 관련 여론을 함께 수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盧후보 대영단” 6·29선언 찬사
뉴스데스크는 14∼16일에도 ‘경제 단체, 전두환 대통령 특별담화 내용 전폭지지’ 등 여러 보도로 4·13조치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4월 하순 양 김 씨가 주축이 된 통일민주당의 지구당 창당을 방해하는 폭력 난동 사태가 벌어졌을 때 신당 창당 반대 세력과 찬성 세력의 내부 분열로 보도했다.
“정치체제와 이념을 초월한 통일을 추진한다”는 통일민주당의 정강이 논란이 되자 5월 15일에 ‘허문도 국토통일원 장관, 통일민주당 정강 국익 수호에 지장’을 톱뉴스로 배치하고 정강을 비판하는 7개 아이템을 잇달아 전했다. 이날 뉴스데스크 앵커는 “정강과 기본문제 가운데 3개항이 급진 좌경세력의 논리로 짜여 있어서 결과적으로 북한의 노선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급진 좌경 운동권에 동조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짜였고 북괴 선전, 선동에 동조하는 내용들이 전면적으로 등장했다”고 전했다. 통일민주당의 반론은 ‘통일민주, 정부성명 반박, 민정 계속적 수정 촉구’라는 한 아이템에서 짧게 전하는 데 그쳤다.
6월 10일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 지명 때는 ‘노태우 후보에 대한 은사 및 동창들의 이야기’ ‘대구시 신용동, 노태우 후보의 생가’ 등 10개 아이템을 잇달아 내보냈고 “노 후보가 정치와 행정의 양면을 체득한 경력, 야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인내의 슬기 그리고 과묵한 언행에서 읽을 수 있었던 인간적 진솔함이 어떤 조화를 이룰지 기대하고 주목한다”고 전했다. 해설에선 “오늘 민정당 전당대회는 이 나라의 40년 헌정 사상 처음으로 우리의 숙원인 평화적 정부이양 전통의 수립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하지만 6·10대회에 대해서는 “대회장 주변의 시가지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으나 큰 충돌은 없었다”고 보도한 뒤 ‘검찰, 시위 선동자 격리 조사 및 엄벌’ ‘어제 시위 때문에 시민들 불안과 불편’ 등 대회에 부정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이후 계속되는 시위에 대해 대부분 ‘산발 시위’라는 제목을 달고 나갔다. 6·29선언에 대해선 “오늘의 대영단은 분명 갈등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국민 대화합을 이룩하는 큰 획을 그은 것이며 우리 국민의 저력을 다시 한번 과시한 정치사적 쾌거”라며 노 후보의 결단을 부각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호헌조치엔 “민주발전 초석될 것”
경향신문 경향신문은 1987년 4월 13일 사설에서 4·13호헌조치에 대해 ‘단임(單任) 실천을 위한 결단이자 사심없는 사려의 표현’이라고 치켜세웠다. 발표 당일 시작한 ‘국운상승 보폭에 맞추는 쇄신정국’ 시리즈(4월 13∼17일)에서 “88올림픽 등을 앞두고 개헌 논의가 역류만 거듭하는 상황에서 파국을 예방한 결단”이라며 “민주 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14일 좌담기사에서도 “평화적 정부이양은 시대적 소명이며 일부의 폭력집권 기도에 쐐기를 박는 대승적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노태우후보 선출땐 “헌정사 새 장”
KBSKBS는 ‘9시 뉴스’에서 4·13호헌조치를 15분가량 중계한 뒤 중대결단이 불가피했던 배경에 대해 “내년 양대 국가 대사를 앞두고 헌법 문제와 관련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제시한 것”이라며 “여야 합의 개헌이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 개헌논의에 더 이상 시간과 국력을 낭비한다면 평화적 정부 이양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개헌 논의 파행의 책임을 야당 측에 돌리며 “야당 측은 국회 개헌 특위 불참을 선언하고 전제조건을 내세우며 대화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14, 15일에는 법무부 장관과 전국 시도경찰이 사회 안정을 해치는 불법 행위에 대해 강력 대처하겠다는 발표문 내용을 비중 있게 다뤘다.
거세지는 시위엔 “산발적” 축소
MBCMBC ‘뉴스데스크’는 ‘4·13호헌조치’에 대한 논평에서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부 이양과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선진 민주국가를 창조해야 되겠다는 고뇌에 찬 결단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각계 반응을 전하며 “올림픽을 앞두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모든 방면의 안정”이라고 하는 등 호헌조치 찬성 인터뷰만 9개 내보냈다. 야당에 대해서는 “두 김 씨(김영삼 김대중)는 신민당을 일대 혼란에 빠뜨리고 말았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