師弟로 만나 司祭의 길로… “참 유머러스하신 하느님”

  • 입력 2009년 6월 26일 02시 58분


처음에는 스승과 제자로 만나 이제는 신학대 동기생으로 나란히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유기성 씨(왼쪽)와 나창식 씨. 나 씨는 25일 열린 천주교서울대교구 부제서품식에서 부제품을 받았다. 김미옥 기자
처음에는 스승과 제자로 만나 이제는 신학대 동기생으로 나란히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유기성 씨(왼쪽)와 나창식 씨. 나 씨는 25일 열린 천주교서울대교구 부제서품식에서 부제품을 받았다. 김미옥 기자
■ 가톨릭대 ‘04학번 동기’ 나창식-유기성 씨

○ ‘2003년 서울 동성고 교사’ 나창식
“교사의 꿈 이루고 성직 택해 부제품 받아도 아직 두려움”
○ ‘2003년 신부 지망 고3’ 유기성
“졸업후 곧바로 신학대 진학 사회경험 없어 때론 아쉬움”

2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품식에서 부제(副祭·사제를 보좌하는 성직자)품을 받은 나창식 씨(34)와 가톨릭대 신학대 3학년에 재학 중인 유기성 씨(24).

두 사람은 신학대에 입학하기 전 사제지간(師弟之間)의 인연을 맺었다. 서강대 사학과 출신의 나 씨는 2002년 서울 혜화동 동성고 교사로 부임한 뒤 2003년 신부가 꿈인 고교 3학년 유 씨에게 세계사를 가르쳤다. 하지만 두 사람은 2004년 서울 가톨릭대에 나란히 입학했다. 나 씨는 대학원에 재학 중이고 유 씨는 군복무로 아직 대학을 마치지 못했다. 가톨릭대 대학원 2학년 중반경에 부제품을 받고, 1년 반 정도 경과하면 사제품을 받는다.

오랜 인연을 지닌 두 사람을 24일 오후 서울 세종로성당에서 만났다. 이야기는 두 젊은이가 받은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지, 왜 신부가 되려고 하는가로 이어졌다. 검은 수단(가톨릭 성직자의 평상복)을 입은 나 씨는 서품식의 기도를 들려줬다. “제가 땅에 엎드린 채 스스로를 하느님께 드리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이 하신 일이라고 믿습니다. 부족한 부분까지 하느님께 드려야죠.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매듭 하나가 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유 씨는 아직 수단을 입을 자격이 안돼 흰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선생님, 아니 형 정말 축하드려요. 학교에서는 먼저 태어나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선생(先生)이었는데 이제는 하느님의 종으로 또 먼저 탄생했네요. 뿌듯하고 가슴이 찡해요.”

유 씨는 신학교 입학시험을 보는 날 나 선생님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고 말했다. “시험 잘 보라고 격려하러 온 줄 알았죠. 그런데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하니 같은 학생이 됐더군요. 그해 스승의 날에는 (형한테) 선물도 하고 노래도 불렀죠. 한동안 형, 선생님으로 호칭이 왔다 갔다 하며 막 헷갈렸어요.”(유 씨)

“다행히 다른 교실에서 시험을 봤죠. 미역국 먹을 수도 있는데 시험보러 왔다는 말이 입에서 안 떨어지더군요. 신학교에서 나이가 많다고 해서 별명이 ‘창식 옹’이었죠.”(나 씨)

사제가 되려면 1년간 예비신학교 과정을 시작으로 대학 4년, 대학원 3년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여기에 군복무 기간을 포함하면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신학교 동기생 50여 명 중 4명이 “성직자가 맞지 않다”며 다른 길을 선택했다.

나 씨는 하느님의 뜻을 따랐지만 1, 2학년 때 갈등이 컸다고 말했다. 동성고와 신학대가 붙어 있는데 담장 너머로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고, 손까지 흔들어주는 옛 동료교사도 보였다.

“어릴 적 꿈이 교사이니 사실 꿈을 이뤘죠. 이미 손에 쥔 꿈을 접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컸습니다. 교사일 때는 학교에서 신학교를 물끄러미 봤고, 신학교에서는 다시 과거의 꿈을 보는 기구한 처지더군요. 그래서 아예 동성고에서 먼 쪽으로 산책 코스를 바꿨죠.(웃음)”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유 씨는 “공익근무로 병역의무를 마쳤지만 고교 졸업 뒤 곧바로 신학교로 진학하는 바람에 못해본 게 많은 것 같아 가끔은 아쉽다”고 말했다.

기본적인 질문이긴 해도 왜 신부가 되고 싶으냐고 묻자 이들은 환한 웃음으로 답했다.

“누가 시켜서 갈 수 있는 길도 아니고, 아주 자연스러운 선택 같아요. 다만, 무엇을 할 수 없어 힘들다기보다는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또래의 신학생들이 나보다 더 강해 보일 때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제대로 받은 것 같아 부러워요. 나는 억지로 온 것 같고.(웃음)”(유 씨)

“친구들이 말을 빙빙 돌리다 결혼 안 해도 되느냐고 물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혼자 생계를 꾸려온 어머니가 맘에 걸렸죠. 하지만 점점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싶다는 내면의 요구가 더 커져 어쩔 수 없더군요.”(나 씨)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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