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지렁이부터 두더지까지 흙속에 생명을 불어넣다

  • 입력 2009년 6월 27일 03시 00분


◇ 흙을 살리는 자연의 위대한 생명들/제임스 B 나르디 지음·노승영 옮김/464쪽·3만5000원·상상의숲

흙이 1cm 쌓이는 데는 넉넉잡아 400년, 적게 잡아도 200년이 걸린다. 물과 바람, 햇빛이 거대한 암석을 쪼개고 깎아서 작은 모래 알갱이를 만들어 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이것이 생명이 자랄 수 있는 살아있는 흙이 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 바로 생물이다.

저자는 “완벽한 흙은 무기물 세계와 유기물 세계가 결혼한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암석과 공기, 물로 만들어진 광물질 흙에는 질소가 빠져 있다. 질소는 단백질과 핵산의 주성분으로 생명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요소지만 무기물 속에는 저장되지 않는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존하는 식물에는 뿌리혹이 있다. 이 혹에는 공기 중의 질소를 암모니아로 바꿔 붙들어 두는 세균들이 살고 있어 식물이 질소를 흡수하도록 돕는다. 세균 같은 미생물이 있어야만 광물질 흙은 기름진 토양으로 거듭나는 첫걸음을 뗄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이 등장하기 오래전부터 지렁이는 항상 땅을 갈았다. 세계사에서 이 하등생물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 동물이 과연 있는지 의심해 볼 만하다.”

다윈은 1881년 마지막 책 ‘땅속 벌레들의 활동에 의한 부신토의 형성’에서 이같이 말한다. 책에는 로마 유적과 영국의 선사 유적이 몇 세기에 걸쳐 쌓인 지렁이 똥에 묻혀 있었다는 사실이 소개돼 있다. 다윈은 지렁이가 유적의 흙 표면에 매년 2.5mm의 두께로 1000m²마다 1만 kg씩의 똥을 더하는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고 추정했다.

지렁이는 흙을 먹고 광물질 입자와 식물 잔해가 뒤섞인 분변토를 땅 표면에 배출한다. 분변토에는 식물이 흡수하기 쉬운 형태의 무기물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지렁이의 분변토 등 유기물 똥에 남아 있는 식물 잔해를 부식질이라고 말한다. 부식질은 칼슘이나 칼륨 같은 식물 생장에 필수적인 양이온군과 결합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지렁이는 땅을 갈아엎는 쟁기 역할도 한다. 흙 입자가 유기물이나 부식질 없이 광물질만으로 이뤄져 있을 때는 흙이 빡빡하기 때문에 아무리 억센 식물 뿌리라도 파고들기 힘들고 공기와 물도 순환되지 않는다. 지렁이는 흙에 굴을 파면서 땅을 경작하고 뒤섞어서 식물이 파고들기 쉬운 구조로 바꿔놓는다.

흙 1m²에 살고 있는 생물의 수는 척추동물 1마리, 애지렁이와 지렁이 3000마리, 진드기 10만 마리, 세균과 방선균 10조 마리에 이른다. 크기가 0.001mm에 불과한 세균부터 각종 곤충과 양서류, 두더지와 땃쥐 등 척추동물까지 갖가지 생물은 흙 속의 무기물을 도와 모래 알갱이에 불과했던 척박한 토양을 생명이 살아 숨쉬는 흙으로 탈바꿈시킨다. 책 속에 실린 각종 생물을 직접 관찰하고 삽화를 그리기도 한 저자는 흙을 “무기물과 유기물, 살아 있는 생물로 구성된, 식물이 자라는 역동적인 자연환경”이라고 정의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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