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를 신는 사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여름이 오는 사이 도시의 모든 지붕들이 날아갔다/도시의 지붕들이 날아가는 사이 길들도 사라졌다…열두 켤레의 구두를 더 신는 사이 계절은 바뀌지 않았다/구두의 계절이 계속되는 사이/나는 구두의 수를 세지 않았다/구두 속에서 나오지도 않았다”(‘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걸어야 하는 도시의 모든 사람은 구두를 신는다. 구두를 신는 일이 사회 속에 섞여 살아가는 일이라면 닳은 구두를 갈아 신는 사이 도시의 지붕들이 날아가고, 길이 사라지고, 계절이 바뀌어 버리는 풍경은 새삼 슬프다. 시간과 일상에 떠밀려 살다 때로는 구두를 신은 채 잠들어 버리기도 한다. 시인처럼 ‘구두’로 상징되는 그 무엇 속에 오래 묻혀 있기도 한다. 2005년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에는 몽환적이고 낯선 장면들이 자주 엿보인다. 서커스 천막 안에서 내가 불타고 다시 살아나는 마술이 상연되는 ‘서커스 천막 안에서’, 첨탑 위에 갇힌 누군가가 구름 위에 편지를 쓰는 ‘고딕 시대와 낭만주의자들’ 등 낯설고 비틀린 동화를 통해 일상을 새롭게 조명해 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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