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것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간송미술관을 세운 간송 전형필(1906∼1962·사진)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영국 출신의 수집가 존 개츠비가 명품 고려청자를 판다는 소식을 듣고 현지로 달려갔다. 대대로 물려받은 5000석 전답을 판 돈도 가지고 갔다. 간송의 설득 끝에 원숭이청자인 국보 270호 청자모자원형연적(靑磁母子猿形硯滴)을 비롯해 국보 65호 청자기린유개향로(靑磁麒麟(뉴,유)蓋香爐), 국보 66호 청자상감유죽연로원앙문정병(靑磁象嵌柳竹蓮蘆鴛鴦文淨甁) 등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간송의 아들 전성우 간송미술관장(75)이 26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진 ‘간송 전형필의 문화재 사랑’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아버지가 문화재 수집을 통해 우리 문화를 지켜낸 일화 등을 전했다. 이 행사는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시대와 함께한 박물관, 박물관인’ 세미나의 하나로 열렸다.
간송은 1938년 서울 성북동에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간송미술관의 전신)을 세웠다. 전 관장은 “간송의 수집에 대해 전설 같은 이야기가 많지만 당신께서 직접 남긴 이야기는 1957년 잡지 ‘신태양’에 실린 ‘수집 여담’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전 관장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산 간송의 면모도 들려줬다. “밤새도록 일하고 오전 10∼11시에 느지막이 일어나 요즘 말로 ‘아점’(아침 겸 점심)을 먹은 뒤 하얀 모시옷을 휘날리며 문화재를 수집하러 나갔다가 밤 12시가 돼서야 돌아오셨죠.”
전 관장은 “간송이 1940년 보성고등학교를 인수한 것은 3·1운동 때 기미독립선언서를 찍어낸 인쇄소가 있으며 독립운동의 산실인 보성고등학교가 경영위기로 폐교 위기에 처하자 민족학교로 키우기 위한 결단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박물관과 나’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김재원 초대 국립박물관장,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과의 인연, 도굴된 유물을 감정해 유적을 찾은 일화 등을 들려줬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