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만으로도 위대했던 ‘팝의 황제’ 44년 무대조명 꺼지다

  • 입력 2009년 6월 27일 03시 00분


꿈으로 끝난 컴백 마이클 잭슨이 2009년 3월 영국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연합뉴스
꿈으로 끝난 컴백 마이클 잭슨이 2009년 3월 영국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연합뉴스
여섯 살 때 잭슨파이브로 데뷔…통산 7억5000만장 앨범 판매
팝의 역사에 새 장 열었지만 성형 탐닉하며 나락으로

‘영원한 네버랜드의 피터 팬을 꿈꿨던 황제, 끝내 영원으로 떠나다.’

‘킹 오브 팝’(King of Pop·2008년 발매한 베스트앨범 제목). 그에게 다른 호칭은 필요 없다. 전 지구에 오싹한 충격을 안겨준 스릴러(Thriller·1982년 앨범)이자, 노래는 치명적으로 아름답다 못해 위험하기까지(Dangerous·1991년 앨범)했다. 13개의 그래미상 수상, 통산 7억5000만 장이 넘는 앨범 판매. 팝 DJ인 김광한 씨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로큰롤의 제왕이었다면 그는 장르를 초월한 황제였다”고 말했다.

Who is it (앨범 ‘데인저러스’ 수록곡)

19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 주 게리 시. 평범한 노동자 가정 잭슨가(家)의 7번째 아이. 하지만 마이클 조지프 잭슨의 천재성은 일찌감치 드러났다. 다섯 살짜리 꼬마가 ‘솔(soul)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의 춤과 음악을 그대로 따라 했다. 장안의 화제가 된 이들 형제를 여가수 다이애나 로스가 음반레이블 ‘모타운’에 소개했다. ‘아일 비 데어’ 등 7장의 플래티넘(100만 장 이상 팔린 앨범)을 기록한 ‘잭슨 파이브’는 이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영광 뒤엔 잭슨의 시련이 감춰져 있었다. “아버지 조가 마이클을 가혹하게 조련한 건 돈벌이가 목적이었다”(미국 MTV 다큐멘터리 ‘마이클 잭슨의 부침’) 같은 폭로에 이은 가족과의 불화와 결별. 마이클은 1979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음반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손잡고 앨범 ‘오프 더 월’을 낸다. 1000만 장 이상 팔렸으나, 이는 대관식을 앞둔 황제의 전초전에 불과했다.

History (앨범 ‘히스토리’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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