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루스(고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의 또 다른 탁월한 자질은 피정복민들이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페르시아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는 승자의 언어와 종교를 결코 타 민족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각 지방의 신과 숭배의식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통치조직 역시 변하지 않았다.”》
‘황금의 제국’은 서구문명의 요람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란 국립박물관의 대표적 페르시아 유물 200여 점을 빌려와 마련한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 특별전은 30여만 명의 관람객이 찾을 만큼 큰 호응을 얻었다. 지금의 이란 지역인 고대 페르시아에서 융성한 문명은 서구 문명의 요람이나 다름없다. 페르시아를 계승한 파르티아 문명과 그리스 문명이 만나 헬레니즘 문명을 낳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서양사는 이를 외면하고 페르시아를 유럽을 침략한 이민족으로 기억하려 한다. 300명의 스파르타 군대가 페르시아 대군과 맞서 죽음의 혈투를 벌이는 할리우드 영화 ‘300’에서도 페르시아는 군사력만 강한 무자비한 이교도로 나온다.
이탈리아 밀라노 이울름대 교수인 저자는 그런 왜곡된 역사관을 배제하고 기원전 6세기 서아시아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세계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역사와 문명을 고대 유물을 통해 되살린다. 기원전 5000년 선사시대에서 기원전 6세기∼기원전 4세기 전성기를 누린 아케메네스 왕조, 651년 사산왕조의 이슬람화 이전까지 고대 페르시아 5600여 년의 역사를 이 책에 담았다.
거대한 제국을 세운 아케메네스 왕조는 각 민족의 세련된 예술 감각을 높이 평가해 여러 방면에 활용하면서 세계적인 예술품을 남겼다. 아케메네스 왕조 최전성기를 이끈 다리우스 1세는 왕궁을 지을 때 고용한 노동자들과 건축 자재와 관련된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에 따르면 레바논의 삼나무, 간다라의 티크 나무, 사르디스와 박트리아의 금, 코라스미아의 청금석, 이집트의 은과 동, 에티오피아의 상아 등이 왕궁을 짓는 데 사용됐고 그리스와 바빌로니아의 장인들이 이를 가공했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웅장한 궁전 페르세폴리스에는 정복지 각국에서 진상품을 바치기 위해 궁전을 찾아온 사절들이 왕 앞에서 경의를 표하는 장면을 묘사한 부조가 있다. 사절들의 옷차림을 세심하게 표현한 이 부조는 어느 나라에서 뭘 가져왔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는 고고학 사료이기도 하다. 사냥은 페르시아 왕의 용맹함을 보여주는 상징 의식이었는데, 이란에서 발견된 페르시아 인장 조각들은 이런 광경을 그대로 전한다. 페르세폴리스의 부조 중 황소와 말을 공격하는 사자는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권을 상징한다. 전차를 탄 다리우스 1세가 뒷발로 버티고 서서 으르렁거리는 사자를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은 제국을 호령하던 제왕의 기상을 웅변하고 있다.
이란 서부 루리스탄 지역에서 나온 수많은 소규모 청동제 유물을 루리스탄 청동기라 부르는데 전 세계 박물관과 개인 소장가들의 극찬을 받고 있다. 기원전 2세기부터 제작된 이 청동기들은 전사와 기수, 수많은 무기, 마구를 정교하고 우아하게 조각한 것이다.
돌과 도자기를 사용해 만든 웅장한 사자 조각, 황금팔찌와 뿔잔, 궁전을 장식한 화려한 채색 타일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큼지막한 많은 사진이 인상적이다. 사진 속 많은 고고학 유물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영국의 브리티시뮤지엄에 소장돼 있어 유럽인들이 수많은 페르시아 문화재를 약탈해간 사실도 엿볼 수 있다. 페르시아는 당시 신라와도 활발히 교류했기 때문에 우리 문화에도 그런 요소가 깃든 유물을 볼 수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