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강사로… 밴드 보컬로… 알바생으로…
“서사보다 ‘소설’장르의 실험에 더 흥미
앞으로도 쓰고 싶은대로 쓰고 싶다”
“요새 뭐 써?” 동료작가들에게서도 이런 질문을 받는 게 한유주 작가(27)의 고충이다. 소설을 쓸 때 제목부터 정하는 그는 나름대로 위기를 넘겨본다. “재의 수요일.” 하지만 질문이 이어진다. “제목 말고, 어떤 내용인데?” 곤란한 순간이다. “음…두 사람이 한집에 있는데, 불에 탔는지 아닌지 모를 이야기.”
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긴지, 너무 고민해선 안 된다. 두 사람이 누구며, 왜 한집에 있는지, 결국 불에 탔다는 건지 안탔다는 건지 등에 대해서도. 애당초 그의 작품에는 ‘한 줄로 요약되는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끝없이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평론가 김형중) 작가이자, “장르에 대한 실험 자체를 소설로 만든 작가”(평론가 이광호)다.
한 씨의 첫 인상은 “나이에 비해 키가 크고, 나이에 비해 표정이 없다”는 그의 소설 ‘죽음에 이르는 병’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173cm의 키에 세련된 인상을 주는 미소녀. 1982년생이지만 등단한 지 7년 된 소설가이며, 난해하기로 손꼽히는 텍스트 실험적 소설집 ‘달로’ ‘얼음의 책’을 펴냈다. 말투도 전위적이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키만 커요”라고 자책하듯 불쑥 내뱉거나 “진짜 눌변”이라며 미안해하는 어투가 친근했다.
그는 “소설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다”고 말한다. 마치 “리포트를 처음 쓰는 대학생이 높임말로 써야 하나, 반말로 써야 하나 고민하듯 과거형으로 써야 하나, 미래형으로 써야 하나부터 갈등이었던 상태”에서 첫 습작 ‘달로’(2003년)를 썼고, 계간지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했다. 그는 “시, 희곡과는 다른 소설만의 고유한 장르성이 어떻게 획득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소설을 쓰게 한 것 같다”고 한다.
“소설은 허구죠. 근데 서사는 아닌 것 같아요. 서사는 ‘아예 없지도 않지만 전부도 아닌, 소설의 미약한 일부’에 불과해요. 모든 이야기는 한 줄로 요약될 수 있는데, 전통적 서사에선 그 한 줄을 떠받치기 위해 문체, 에피소드 등이 들어가잖아요. 그런 것들이 작가의 ‘스타일’을 만들게 되는데, 저는 그 대신 다른 것을 채워 넣는 실험을 하고 싶었어요.”
그의 작품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메타소설)이며, 그것을 위해 동원되는 것은 서사 밖에 있는 수사적 장치들이다. 주변을 둘러싼 모든 읽고, 감각한 것들, 의심한 것들이 질료가 된다. ‘물건이 널려 있다는 표현에 대해 생각한다 혹은, 물건이 널려 있다는 표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돌아왔다, 라고 쓰지 않는다’같이 빈발하는 부정(否定)의 묘사나 도돌이표처럼 반복·변주되는 문장들은 다양한 관심사와도 맞물려 있다.
작가는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인 성기완 시인 등이 참여한 밴드 ‘더 촙(The chop)’의 보컬이기도 할 만큼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형식을 문학에 대위 시킨 것도 그 때문. 비문, 번역체 등 낯선 문장들은 언어에 대한 호기심과 연관된다. 그는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데 외국어를 배우며 “자연스럽게 구사하게 된 한국어”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서울대 미학과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낮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예대, 동국대에 출강하고 밤이면 홍익대 인근의 바에서 시급 아르바이트를 한다. 소설은 언제 쓰는지 궁금할 법한데,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일하는 이 바에서 생각보다 많은 양의 글을 읽고 쓴다고 한다.
“불쑥 떠오른 문장은 지우지 않는 편이고, 완성된 작품은 거의 퇴고하지 않는다”는 그는 혹독하기로 소문난 작품의 ‘난독성’에 대해 ‘고의성 없음’을 강조했다. “작가가 가진 영역이 각자 다르잖아요. 서사를 중시하는 전통도 중요하지만, 저도 나름대로 재미를 느끼면서 써요. 사건을 지연시키고, 시간을 흔들어보는 것, 모든 것을 다 부정한 묘사 뒤에 남게 되는 것 등이 관심사니까요.”
올해 말쯤에는 첫 장편을 쓰려고 한다. 내용을 물으려다, 계속 이런 실험을 감행할 거냐고 질문을 바꿨다. “등단했을 때 소설가 이인성 선생께 들은 말씀을 기억하고 있어요. ‘하고 싶은 대로 써라’고 하셨거든요. 앞으로도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싶어요.”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